컨텐츠 바로가기

05.23 (목)

통과 앞둔 전세사기특별법… “국가의 법적 의무” “모호하고 재원 마련 어려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선(先)구제 후(後)회수’를 골자로 하는 전세사기피해자지원특별법 개정안이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세상을 등지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며 전세사기를 단순한 사인 간의 거래가 아닌 ‘생존’이라는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다만 재원 마련, 형평성 문제 등 우려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아 당분간 갈등 양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국회 등에 따르면 이달 28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담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가 유력해지고 있다.

세계일보

정태운 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위원장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란 공공이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우선 매입해 보상한 뒤 구상권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책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국토위 전체회의를 통과해 법사위로 넘어왔지만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60일 넘게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야당은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을 넘기는 점을 활용해 지난 2월 해당 법안을 본회의에 단독 회부했다.

지난 1일 대구에서 세상을 등진 여덟 번째 전세사기 피해자가 발생하며 선구제 후회수 방안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피해자들은 추가적인 전세사기 피해자 양산을 막으려면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추경호 신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경호 신임 원내대표는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적극 소통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일부 전문가들도 ‘범죄피해자보호법’을 예로 들며 선구제 후회수 방안이 적법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해당 법 제1조는 ‘범죄피해자 보호·지원의 기본 정책 등을 정하고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피해를 받은 사람을 구조함으로써 범죄피해자의 복지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피해자보호법에서도 묻지 마 폭행을 당하거나 했는데 보상을 못 받을 경우 평균 임금의 40개월분, 경우에 따라서는 4000만원에서 최대 9100만원까지 지원해준다”며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투자 목적으로 전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생활의 기본인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복지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다만 국가의 재정 상황을 아예 무시할 순 없으니 이를 고려해 피해 지원금 규모를 고려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세계일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제대로 된 해결을 위한 이어말하기'에서 피해자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해당 법 통과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법리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많고 충분한 재원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재의 개정안은 매매대금 산정 및 지급방법의 핵심인 가치 평가 기준을 공정한 가치 평가라는 추상적인 기준으로만 규정하고 있고, 최저 매입가격의 기준 역시 ‘임차보증금의 일정 비율’인지, ‘최우선변제금’인지 확실하지 않다.

아울러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기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은 1만5433명이다. 정부는 내년 5월까지 피해자는 3만6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이에 따라 최대 3~4조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3∼4조원을 주택도시기금으로 충당하기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 HUG의 입장이다. 김택선 HUG 준법지원처장은 “주택도시기금의 수입원인 청약저축의 메리트가 감소하고 있고, 국민주택채권도 지난해부터 마이너스로 전환되고 있다”며 “주택시장 위축 등으로 인해 여유자금은 2021년 49조원에서 올해 3월 기준 13조9000억원까지 지속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