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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젊은 농민공은 랩을 했다…“떠날 수 없어 ‘못’이 돼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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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중국 농민공 래퍼 난선의 ‘공장’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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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안개가 별을 덮어. 주변의 마을들은 안개 속에 파묻혀. 어릴 때부터 강물은 맑지 않았어. 이제껏 우리는 돈과 질병을 바꿔왔네. 이주할 수 없는 이들은 못이 됐네. (…) 맞서 싸우기 위해, 똑바로 쳐다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해”(노래 ‘공장’)



지난 5일 웨이보와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된 래퍼 ‘허난랩의 신’(이하 난선)의 신곡 ‘공장’은 아티스트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한다. 이름을 통해선 허난이라는 지역성을, 가사를 통해선 신세대 농민공의 계급적 위치를 드러냄으로써 동시대 또래 청자들의 아픔과 교감한다.



팬데믹 시기 허난은 중국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사회적인 지역이었다. 2022년 4개 마을은행들의 뱅크런 사태로 4천여명의 시민들이 수개월 동안 정부 청사 앞 농성 시위를 벌였고, 그해 가을에는 정저우시에 있는 폭스콘 공장 노동자 수만명이 억압적인 제로코로나 방역과 노동안전 위협에 항의하며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인 바 있다. 많은 이들이 “허난은 작은 중국”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도시 떠날 수도, 고향으로 갈 수도 없다





허난성의 소도시 출신으로 대도시에 사는 난선 역시 농민공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인디 신에서 뉴웨이브와 이모랩을 대표하는 신세대 래퍼 중 한명으로 3년 전 중국의 음원 서비스 넷이즈뮤직에서 ‘포스트 밀레니얼 웨이브’ 아티스트로 선정된 바 있다. 그가 최근에 발표한 ‘공장’ 뮤직비디오는 며칠 사이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회수와 화제성 모두에서 무명인 그가 이제껏 쌓아온 명성을 모두 뛰어넘는다.



‘공장’에서 난선은 신세대 농민공들이 마주한 현실을 노래한다. 농민공들은 자신을 병들게 하는 고향 땅에서 애착을 가질 수 없었고, 생계를 위해 분투해왔다. 신세대 농민공의 부모들은 자식에게 “더 나은 환경을 주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지만, 난선은 도리어 “엄마,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결코 농민들의 잘못이 아니죠”라고 위로한다. 뮤직비디오 공개와 함께 그는 자신의 웨이보 계정에 이렇게 적었다. “이 노래를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바칩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신세대 농민공이 처한 곤경을 사실주의적으로 드러낸다. 가령 “이주할 수 없는 이들은 못이 됐네”라는 노랫말은 이른바 ‘사회 저층’의 민중이 마치 ‘못’처럼 가난에서 벗어나거나 나은 환경이 주어진 공간으로 이주할 수 없는 처지를 드러낸다. 신세대 농민공을 연구해온 사회학자 뤼투는 “도시를 떠날 수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말로 농민공들의 상황을 설명한 바 있다.



젊은 농민공들을 억압하는 ‘못’은 무엇인가. 공장 굴뚝이 내뿜는 폐허, 어두컴컴한 마을 거리,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짓누르는 자본의 착취, 모순에 맞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금지된 정치체제 등 하나의 문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현실일 것이다. 랩이라는 장르가 뉴욕 브롱크스 빈민가 청년들의 고통스러운 현실과 투쟁에서 탄생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떠올린다면, 오래된 공장이 즐비한 허난성의 중소도시를 삶의 속박이자 숙명으로 여기는 신세대 농민공으로부터 이 노래가 불려진 것 역시 자연스러워 보인다.



신세대 농민공의 곤경을 노래한 것은 이 무명 래퍼만은 아니다. 광둥성 즈양 출신의 쉬리즈 역시 또래의 여느 친구들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공장이 많은 대도시로 갔던 신세대 농민공 중 하나였다. 스물한살이었던 2011년 2월, 선전에 있는 폭스콘 공장에 입사해 아이폰 생산라인에 투입되어 일하기 시작했다. 다른 또래 노동자들처럼 그 역시 하루 16~17시간씩 일했고, 심할 땐 한달에 이틀 정도밖에 쉬지 못했다. 2014년 2월, 3년의 계약기간이 끝나 타의로 일을 그만두게 된 그는 장쑤성에 가서 잠시 일하다가, 같은 해 9월26일, 다시 폭스콘 공장으로 와서 3년 계약직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이때 그가 쓴 근로계약서에 적힌 월급은 1900위안(약 33만원)이었다. 이런 식의 계약직 고용 수법은 한국에서도 익숙하다. 고용에 대한 기업의 재량권 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노동유연화’가 바로 그것이다.



2014년 9월30일 오후 2시, 쉬리즈는 공장 근방 사글셋방이 가득한 건물 17층에 올라가 떨어져 스물넷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아이폰 만드는 하청 노동자로 짧은 20대를 다 보냈고, 동시에 시인이기도 했다. 그가 쓴 시들은 죽은 뒤 주목받기 시작했고, 중국의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오기도 했다.



“몇 해 전 그는/ 배낭 멘 채/ 이곳을 밟았다/ 이 번화한 도시를// 의기양양하게// 몇 해 뒤 그는/ 자신의 유골을 움켜쥐었다/ 이 도시의/ 네거리에 서서.”(시 ‘망연히 사방을 둘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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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삭제 또는 이름 검색 금지





랩이나 시를 통해 현실의 억압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노래에도 한계가 있다. 인디뮤지션 셰위강 역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예술가 중 하나다. 공연 시장 자체가 극도로 상업화되면서 소규모 공연을 통해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통로도 과거보다 훨씬 좁아졌다. 그는 노래를 통해 현실의 억압을 표현한다. ‘신축’이란 곡에서는 “수치심을 쓴 포도주와 피로 여기라”고 노래했고, ‘임인’에서는 “더러운 놈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고, 거세된 기억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노래한 바 있다.



리즈는 억압에 눌려 마이크를 빼앗긴 가장 상징적인 아티스트다. 대표곡 ‘인민에겐 자유가 필요 없어’를 통해 “지금이야말로 가장 살기 좋은 시대”라고 반어적으로 풍자해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그는 2019년 4월 갑자기 예정된 공연들을 취소하고 사라졌다. 그해 봄은 130여명의 활동가들이 연이어 체포된 시점이기도 했다. 이날 중국의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그의 노래들은 삭제됐고, 그의 이름은 검색 금지어가 됐다. 2020년 8월에 이르러 다시 무대에 섰지만, 가장 사랑받는 노래를 부르는 것만큼은 불가능해졌다.



래퍼 난선의 앞에도 높은 장벽이 있다. 신곡이 엄청난 주목을 끌자 그는 웨이보 계정에 올렸던 사회 비판적인 글들을 스스로 삭제하고, ‘공장’의 해석을 두고 쟁론을 삼가달라는 당부를 게시했다. 이 곡이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될 경우 곧바로 당국의 제재가 가해질 것이 우려되기 때문에 ‘전술적 방어’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공장’의 한 구절이 이런 불안정하고 모호한 처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나는 이곳을 사랑하지 않아. 그냥 여기서 태어났을 뿐이야.” 신세대 농민공들은 노래와 시로 작은 불복종을 이어가고 있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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