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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샤워하고 나왔을 때 그가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선정성 뒤에 가려진 편파성 [남기현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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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스토미 대니얼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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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의도는 분명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형사법정에서 진행된 스토미 대니얼스의 증언은 전세계인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성인배우 출신인 그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의혹 사건에서 입막음 대상이 됐다고 주장하는 여성이다.

이날 대니얼스의 진술에는 노골적인 성관계 묘사가 꽤 많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증언 대부분은 기존에 이미 알려진 내용이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런데도 그녀를 증인으로 채택한 까닭은 뭘까. 이유는 분명하다.

일단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다. 게다가 무대가 법정인 만큼, 성관계가 실제 있었으며 그녀에게 돈을 주고 입막음을 시도했음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와 그녀의 성관계 여부, 돈을 줬는지 여부는 이번 재판의 본질이 아니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서류조작 등 불법행위가 있었는지를 가리는 것이 재판의 핵심이다.

트럼프 측은 성관계 자체를 부인한다. 입막음용 돈 지급이나 장부 조작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번 재판은 여러 면에서 트럼프에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인지 ‘이 재판의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것과 마찬가지이며, 트럼프측 역시 항소할 것이 뻔하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 “판사·검사 모두 민주당 지지자”

이번 재판은 후안 머천 판사가 맡았다. 그에 대한 현지 주류 언론의 평가는 매우 후한 편이다.

NPR에 따르면, 그는 뉴욕 지방법원에서 16년간 재판관을 지낸 베테랑 판사다. 론 커비 변호사는 NBC와 인터뷰에서 “그는 진지하고 스마트하며 침착한 판사다. 변호인들을 향해 소리치는 유형이 아니고, 간단명료한 판결로 잘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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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머천 판사 스케치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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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지방검찰청에 재직했던 변호사 캐런 프리드먼 애그니필로는 CNN과 인터뷰에서 “머천 판사는 미디어 서커스(흥미 위주의 보도) 등 모든 종류의 서커스를 경계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 측은 이 판사에 대해 기피신청을 했다. 정치적 편파성 때문이다. 물론 기피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머천 판사의 딸은 디지털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주요 고객은 선거에 나온 민주당 후보와 비영리단체라고 한다.

머천 판사 역시 민주당 지지자인 것으로 보인다.

폭스 뉴스에 따르면, 머천 판사는 큰 금액은 아니지만 여러 차례 민주당 후보에 기부금을 냈다.

2020년 7월,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조 바이든에 15달러를 기부했다. 같은 해 다른 민주당 그룹에도 기부금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를 기소한 검사측도 친 민주당 성향인 것이 확인되고 있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수잔 호프핑거 검사는 2020년 바이든 선거운동에 500달러를 기부했다. 호프핑거 검사는 민주당 정치인들과 자유주의 단체들이 사용하는 모금 플랫폼(액트블루)에 900달러 이상 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뉴욕포스트는 호프핑거 검사가 2004년부터 민주당에만 기부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재판에서 트럼프 측 변호인인 토드 블랜치가 “대니얼스의 증언이 편파적”이라고 주장하자 호프핑거 검사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맞섰다. 머천 판사는 호프핑거의 손을 들어줬다.

이와 관련해 뉴욕주 하원의 엘리스 스테파닉 공화당 원내대표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조 바이든의 마녀사냥은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라며 “이 재판의 검사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조 바이든의 기부자”라고 비판했다.

◆ 스토미 대니얼스 증인 출석 “재판 시작 직전 트럼프 측에 통보”

스토미 대니얼스의 증인 출석은 사전에 알려지지 않았다. 재판 시작 직전 트럼프 측에 공지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야말로 ‘깜짝 등장’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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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재판 스케치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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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트럼프 측은 강력 반발했다.

트럼프는 재판에 앞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렸다.

그는 “방금 막 오늘 증인이 누구인지 들었다. 전례없는 일이다. 변호인들이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며 불만을 표했다.

하지만 이 게시글은 곧바로 삭제됐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은 머천 판사가 트럼프에게 내렸던 ‘함구령’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앞서 머천 판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이번 재판과 관련된 증인과 검사, 법원 직원, 배심원, 그 가족들을 비방하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SNS 등에 비판글을 올리자 지금까지 총 1만달러 벌금을 부과했다.

머천 판사는 벌금을 넘어 ‘감옥 수감’ 가능성까지 언급한 상태다.

재판이 시작되자 트럼프 측 변호인은 “대니얼스가 두 번째 증인으로 나올 것이란 통보를 방금 받았다. 그녀의 증언, 특히 성적 행위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 다시한번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니얼스의 증언을 막지 못했다.

◆ 트럼프, 1주일에 4일 뉴욕에 발 묶이고…바이든은 전국 유세

이번 재판은 최소 6주간 진행될 예정이다. 이 기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1주일에 4번 뉴욕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미국은 매우 넓기 때문에 트럼프가 전국 유세를 다니기가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최근 뉴욕타임스(NYT) 보도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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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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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체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수요일에 주요 일정을 잡고 있다고 전했다. 그 이유는 월~금요일 가운데 수요일이 유일하게 트럼프 재판이 열리지 않는 날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날만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펼칠 수 있다.

다른 날엔 트럼프 재판 뉴스가 주로 보도될 것이다.

하지만 수요일엔 트럼프 선거 캠페인이 언론에 전해질 수 있다.

NYT는 “백악관과 바이든 선거캠프는 트럼프 선거 캠페인이 언론에 노출되는 기회를 차단하기 위해 수요일에 행사를 잡아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에게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키려 한다”고 보도했다.

◆ 미국인 절반 이상 “트럼프 기소는 정치적 결정”

트럼프가 역대 미국 대통령 최초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지만 그에 대한 지지세는 여전히 강하다. 특히 미국인들 상당수는 이번 재판을 ‘정치적 재판’으로 보고 있다.

최근 하버드대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55%가 ‘트럼프에 대한 기소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CNN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6%가 ‘트럼프 재판에서 공정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데 회의적’이라고 봤다. 공정할 것이라는 응답은 44%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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