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노인을 위한 집은 없다?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실버타운을 탐방하며 노년의 주거공간을 소재로 삼은 예능 프로그램 ‘은퇴설계자들’. 티브이엔(tvN)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김은형 | 문화부 선임기자



‘어디서 늙어갈 것인가’가 고령화된 우리 사회의 큰 관심사가 된 게 맞나보다. 교양 다큐나 시사 프로에서 간간이 나오던 소재가 이제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진출했다. 십년 전만 해도 티브이 토크쇼에서 수다를 떨던 인기 연예인들이 다양한 실버타운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내일(10일)부터 방영된단다.



몇달 전 건설 붐이 일어난 고급 실버타운 이야기를 쓰면서 그림의 떡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향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선 앞 동 뷰라고 해도 내 집에서 늙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집 앞에 화분을 잔뜩 키우며 해 질 녘 집 앞 평상에 앉아 같이 수다를 떠는 이웃이 없는 세대다. 없으면 못살 절친들이 있지만 종일 수다를 떨면서도 얼굴 보는 건 분기별로 한 번도 힘든 ‘랜선’ 친구들이다. 현실적으로는 제2 베이비붐 세대인 내 또래 인구비율을 고려하면 돌봄이 필요해졌을 때 가족이나 큰돈에 의지하지 않고 집에서 공공서비스에만 의지하기는 무리다. 게다가 지금 내 집의 내세울 거리라고는 서울에서 매연이 가장 심하다는 정도? 문화생활은 이미 넷플릭스와 유튜브에 의탁한 지 오래다. 값비싼 수도권의 실버타운을 열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서울보다는 훨씬 저렴한 마을 규모의 전북 고창 실버타운에 부모님이 입주해 만족스러운 삶을 꾸려간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보니, 꽤 괜찮은 선택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버타운 입주가 내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곳 역시 ‘여생을 보내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실버타운이 돌봄이 본격적으로 필요해지면 퇴소해야 한다. 치매가 오거나 거동이 불편해지면 다른 시설로 옮겨야 한다는 점에서 실버타운도 집이 아니라 시설처럼 느껴진다.



맘 편하게 여생을 보낼 내 집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돌봄이 필요한 노인 주거시설에 최대한 집과 같은 자립적 일상을 유지하도록 돕는 ‘어시스턴트 리빙’의 개념을 도입한 케런 브라운 윌슨은 기존 시설들이 그곳에 사는 노인이 아니라 자녀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시설 입소를 대부분 노인이 아니라 자식들이기 결정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함께 또는 따로 시설을 둘러보는 자식들에게 어필하는 건 안전과 위생이다. 걷다가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지거나 샤워도 못하고 용변도 처리하지 못하는 사태를 막는 게 자식들의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걸음이 위태로운 노인은 휠체어가 강요되는 시설에 들어가 자력보행을 포기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고립감 등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는 돌봄 시설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가져온 ‘미친 자’ 가 등장한다. 위생이 가장 중요한 요양시설에 개와 고양이, 새를 들여온 의사 빌 토마스다. 삶을 이어가기 위한 시설에 대기된 죽음만이 가득하다는 사실에 고심한 그는 요양원 경영진과 개, 고양이까지 돌봐야 한다는 것에 난색을 표하는 돌봄 인력들을 설득하고 밀어붙여 동물들을 들였다. 무모하게도 잉꼬 백 마리를 한날 배달해 복도에 새 백 마리가 날아다니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을 겪은 뒤에도 수많은 문제들에 봉착했다. 하지만 하나씩 해결해나가면서 노인들이 변해가는 과정, 개를 보살피고 새를 기르며 다시 삶이라고 할 만한 것을 되찾아오는 것을 목도했다. 저자는 이를 ‘초월’이라는 심리학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에게는 매슬로의 욕구 위계 중 자아실현 단계보다 더 위에 초월단계가 존재하는 데 “다른 존재가 잠재력을 성취하도록 돕고자 하는 초월적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삶의 황혼에 다다른 노인들에게도 동물이나 아이를 돌보고, 이웃에게 도움을 주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가 있다는 의미다. 실버타운이 노인들만의 성채가 되는 것을 벗어나 이웃들과 교류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실제 국외에서 마을 융합형 단지들이 늘고 있는 건 이런 문제의식의 발로다.



최근 서울시가 서울의 노년층을 지역으로 옮겨살 수 있게 하는 ‘골드시티’ 구상을 발표했다. 서울의 주택부족과 지역의 소멸위기를 함께 해결한다는 취지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나오는 기사마다 ‘명품 주거’라는 표현이 요란한 디자인의 한강의 세빛둥둥섬을 떠올리게 한다. 고급 시설보다 노년의 욕구와 의지가 반영되는 거처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건 나만이 아닐 것 같다.



dmsgud@hani.co.kr



▶▶한겨레 서포터즈 벗 3주년 굿즈이벤트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기획] 누구나 한번은 1인가구가 된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