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거대양당이 따라한 ‘민노당 모델’…다시 미지의 조직 실험으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2004년 5월31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국회 입성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서 국회로 들어오고 있다. 김정효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제22대 총선과 함께 진보정당운동의 한 시기가 마무리됐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참여하길 거부한 진보정당들은 다시 원외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야 하게 되었다. 2004년 이전 민주노동당처럼 말이다.



이참에 진보정당들은 민주노동당이 무엇을 무기 삼아 막강한 기성 정당들에 도전했었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그 중심에는, 아직 한국 사회에 낯설었던 정당 조직 형태의 실험이 있었다. 민주노동당이 등장하고 나서야 익숙해진 현대적 대중정당 모델이 그것이다.



아직 제6공화국 초기이던 21세기 벽두에만 해도 한국의 정당들은 ‘삼김’씨를 정점으로 한 명망가 중심 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오랜 정치 풍토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당비를 내고 당의 일상 사업에 참여하며 명확한 당원 정체성을 지닌 진성당원들에 바탕을 둔 정당 형태를 처음 선보였다. 당원들이 민주적으로 선출한 당내 대의기구가 주요 사항을 결정했고, 공직 후보는 당원 투표로 선출됐다. 19세기 말에 독일 사회민주당이 창안하고 이후에 좌우를 떠나 보편적 정당 형태로 자리 잡은 대중정당 모델이 드디어 한국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삼김 시대 이후 어떤 질서가 들어설지 알 수 없었던 당시 한국 정치에서 이런 대중정당 실험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약진하자 이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에 맞서 양대 정당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조직 형태의 상당한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양대 정당은 공식 대의기구의 역할을 강화하거나 진성당원제 흉내를 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하게는 미국식 예비경선제의 요소를 도입해 저변을 넓히려 했다. 민주노동당이 유럽식 정당 모델을 정착시키려 했다면, 양대 정당은 유럽식과 미국식을 뒤섞었다. 양대 정당은 과거보다 훨씬 더 현대적 대중정당에 가까워졌지만, 대중의 참여는 미국처럼 공직 후보 선출 과정에만 집중됐다.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압도적인 성공을 거둔 쪽은 양대 정당이 진화시킨 모델이다. 이를 통해 양대 정당은 삼김씨라는 지도자 개인들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던 기존 대중 정치 행태를 두 정당에 대한 좀 더 조직적인 지지로 바꿔낼 수 있었다.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에 집중된 대중 참여가 팬덤 정치, 감정 정치의 과잉이라는 부작용을 수반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 모두가 어쩌면 민주노동당이 삼김 시대 이후 과도기를 맞이하던 한국 정치에 던진 충격이 낳은 효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민주노동당과 이를 계승한 진보정당들은 양대 정당의 반작용이 거둔 성공 때문에 오히려 ‘낡고’ ‘폐쇄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진보정당들, 그중에서도 정의당은 또 다른 실험을 통해 이런 궁지를 돌파하기보다는 국회의원 중심 정당이라는 더 고답적인 조직 형태로 퇴행하는 선택을 했다. 이것이 오늘날 정의당이 맞이한 실패의 중장기적 원인 중 하나다.



그렇다면 다시금 광야로 내몰린 진보정당운동이 착수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조직 형태 실험일 것이다. 대중정당의 기본 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지역 등 기층 단위의 자율성을 유례없이 강화하고, 경직된 중앙집권적 체계가 아니라 정세에 맞는 비전과 실천을 통해 유연하게 구심을 만들어가는 조직 형태를 시도해야 한다. 21세기 한국 사회가 봉착한 복잡하고 독특한 모순과 난국에 걸맞은 미지의 정치조직 형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한겨레 서포터즈 벗 3주년 굿즈이벤트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기획] 누구나 한번은 1인가구가 된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