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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배달 중 숨진 치킨집 사장, 근로자‧산재 인정받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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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명의만 사장, 실제 사업주 따로 있어”

조선일보

지난 2021년 10월 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음식점 골목에서 라이더가 배달을 하는 모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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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는 치킨집 사장이지만 실제로는 직원처럼 일하다가 사고로 숨졌다면, 그를 근로자로 보고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보다 실질적인 종속 관계를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2021년 8월 강원도 강릉의 한 치킨집 사장 A씨(당시 26세)는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 배달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A씨 부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와 장례비를 청구했지만, 공단은 이를 거절했다. “A씨를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불복한 유족은 2022년 6월 “유족 급여 등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치킨집 사장으로 등록돼있던 A씨를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A씨는 2020년 오토바이 동호회에서 만난 선배 B씨와 함께 치킨집을 차렸다. 업장의 계좌는 A씨 명의로 개설됐고, 사업주도 A씨로 등록됐다.

그러나 치킨집 보증금과 월세는 B씨 쪽에서 부담했다. A씨 명의의 계좌를 관리한 것도 B씨였다. 치킨집의 영업일과 A씨의 근무 시간 등도 B씨가 정했다. A씨는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 배달을 했지만, 유류비는 B씨가 부담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이주영)는 최근 “공단은 A씨에게 유족 급여 등을 지급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B씨는 자금을 조달하고, 영업을 총괄하며, A씨에게 포괄적인 지시를 전달했다”며 “치킨집의 실제 사업자는 B씨이고 A씨는 그에게 고용돼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어 “B씨는 당시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어 직원인 A씨 명의를 빌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사업자 등록을 했던 것으로 보일 뿐”이라며 “A씨가 사업자 지위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근무 조건과 환경, 보수의 성격, 전후 사정 등을 두루 고려하면 A씨는 실제 사장이 아닌 직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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