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3 (일)

이재명 재판은 왜 한없이 지연될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튼, 주말]

[서민의 정치 구충제] 文 때 형사소송법 개정 탓… 판사들은 사명감 부재

조선일보

일러스트=유현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재명표 ‘대장동 개발’ 또다시 잡음.” 2021년 9월 10일, 주간조선은 대장동 개발과 관련해 화천대유와 그 자회사가 수천억원 수익을 올렸는데, 이게 이재명 전 성남시장과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다. 언론사들의 후속 보도로 이 의혹의 실체가 규명되면서, 이재명은 대장동 개발의 정의를 ‘단군 이래 최대의 공익 환수 사업’에서 ‘윤석열 게이트’라고 바꿔야 했다.

하지만 이것이 빙산의 일각임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22년 1월, 박하영 검사의 폭로로 성남FC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2월 초에는 공익 제보자 조명현이 이재명·김혜경 부부가 공무원을 사적으로 부리고 법인 카드를 유용했다고 폭로했다. 그 뒤 쌍방울을 이용한 대북 송금 의혹까지 터지면서, 이재명은 단군 이래 최대의 사법 리스크를 지닌 이가 됐다. 사람들은 그가 하마터면 대통령이 될 뻔했다는 사실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고, 법의 심판이 나오는 순간을 기다리게 됐다.

하지만 상황은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2024년 5월 현재, 이재명은 여전히 거대 야당의 대표이며, 그가 다음 대선에 나온다는 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달 초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은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 순위에서 37.3%로, 2위인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26.0%)에게 크게 앞서는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민주당이 검찰 독재 프레임을 조직적으로 퍼뜨리면서 이재명이 억울한 희생양으로 보이게 만든 것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재판이 지연됐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같은 이슈를 반복해서 듣는 데서 피로를 느낀다. 그러니 이재명에게 제기된 혐의가 사실로 받아들여지려면 그가 구속되는 것은 물론이고, 죗값에 해당하는 선고가 재판에서 나와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자. 도주와 증거인멸 가능성이 이재명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았던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가 파면을 선고한 지 21일 만인 2017년 3월 31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1심 선고는 그때부터 1년 뒤인 2018년 4월 6일 있었는데, 여기서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이 선고되면서 그녀의 정치 생명은 사실상 끝이 났다. 그런데 이재명은, 비록 그의 측근들은 여럿 구속됐을지언정, 구속은커녕 1심 선고조차 나온 적이 없다. 궁금하지 않은가? 이재명의 재판이 대체 왜 이리 지연되는 것인지?

조선일보

2022년 5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의 모교인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내 게시판에 '검수완박, 이의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두 번째 법안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표결이 통과됐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첫째, 가장 큰 이유가 문재인 정권 때 벌어진 형사소송법 312조 개정이다.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가 “검찰에서 내가 그런 진술을 한 적 없다”고 하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가 재판 증거에서 배제되게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검찰에서 범행을 자백했던 피고인도 말을 바꾸면 피의자 신문 조서가 휴지 조각이 되고, 검찰은 피해자와 목격자 등을 재판정에 출석시켜 원점에서 피고인과 다퉈야 한다. 2020년 1월,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때만 해도 4년 유예 기간을 거쳐 2024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김명수 체제의 대법원이 당장 시행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는 바람에 시행일이 2022년 1월로 당겨진다.

당시 조선일보 보도는 이 개정안 시행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한다. “쟁점이 복잡한 사건은, 결정적 물증이 없다면 재판은 종전보다 길어질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선 이 개정안으로 인해 가해자의 조속한 처벌을 바라는 범죄 피해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간다며 우려하고 있다.” 네티즌들 역시 ‘이럴 거면 검찰 조사는 왜 하냐?’고 황당해했지만, 이재명에게는 이 개정안이 신의 한 수가 됐다.

성남FC 사건, 그러니까 이재명이 성남시장 시절 기업 4곳의 인허가 청탁을 해결해 주고 성남FC에 후원금 133억원을 내게 한, 그래서 제3자 뇌물죄로 기소된 그 사건의 재판에서 일어난 해프닝을 보자. 올해 4월 29일, 검찰은 증인 255명을 추가로 신청한다. 앞서 155명을 증인으로 신청한 바 있으니, 증인은 모두 410명이나 된다. 법정에서 이 증인들에 대해 신문을 모두 진행하면 수년이 걸리겠지만, 검찰로선 그들 모두를 증인으로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이재명을 비롯해 성남FC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성남시와 기업 사이에 오간 공문과 이메일을 증거로 쓰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자료들을 증거로 인정받으려면 그 문건과 이메일 작성에 관여한 성남시 공무원과 기업 실무자들을 법정에 세워 증언을 들어야 하게 된 것.

검찰은 “변호인들이 허위일 가능성이 아주 낮은 서류마저 동의해주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관대한 재판부는 “증거 부동의 여부는 피고인의 자유다”라며 피고인 편을 들어줬다. 그러니 성남FC 사건에서 이재명에 대한 1심 선고는 다음 대선이 끝난 뒤에나 가능할 것이고, 대법원까지 가서 형이 확정되려면 10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성남FC보다 더 복잡한 대장동 사건은 그보다 더 오래 걸릴 터, 어쩌면 피고인이 고령으로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수도 있겠다.

둘째, 판사들의 사명감 부재다. 다들 알다시피 이재명은 재판에 불참하는 일이 매우 잦았다. 당대표라는 지위를 이용하기도 했고, 지난 단식 때처럼 건강을 이유로 대기도 했다. 이 경우 강제 구인 등의 조치를 고려할 법도 하지만, 판사들은 엄포만 놓았을 뿐 한 번도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

여기에 유창훈 판사는 국회에서 구속에 동의한 이재명을 온갖 궤변을 동원하며 풀어줬고, 강규태 전 부장판사는 총선을 앞둔 올해 1월 돌연 사표를 내 버린다. 선거 전담 재판부인 형사34부를 담당했던 강규태는 2022년 9월 기소된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책임지고 있었다. ‘공직선거법은 다른 재판에 우선해 신속 진행하고, 기소 후 6개월 이내 1심 선고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는 점에서 1년 4개월 동안 사건을 뭉개고 있었던 그의 나태함에 분노가 일지만, 갑자기 사표를 던지는 무책임은 분노할 힘마저 잃게 만든다.

후임 판사가 그간의 재판 기록을 검토하는 과정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탓에 총선 전 1심 선고는 물거품이 됐고, 연말 1심 선고마저 불투명한데, 이런 추세라면 대선 전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는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게다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대승했고, 이재명의 차기 당대표 연임도 확정적이니, 제아무리 판사라 할지라도 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기는 두려울 것 같다.

할 수 있는 게 넋두리뿐이니, 다음 말로 글을 마치련다. 이게 다 문재인 때문이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