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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초과 생산된 쌀도 정부가 사줄판 … 과잉생산 부추기고 혈세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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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업 망칠 양곡법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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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이 한국 농산물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을 심화시키고 쌀 공급 과잉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농안법 개정안에 설치하기로 한 가격안정심의위원회는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처럼 매년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정쟁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부결된 법안을 농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시 강행 처리하려는 민주당의 독주를 두고 지나치다는 비판도 나온다.

6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7년간 정부는 양곡 비축·판매로 연평균 5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보고 있다.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2017~2023년 비축한 양곡을 모두 처분할 경우 손실액은 3조6278억원으로 추산됐다. 농식품부는 현재 흉작 등을 대비해 '공공비축양곡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시장가격 안정을 위해 농협 등을 통해 초과 생산된 쌀을 장관 재량으로 매입하고 있다.

문제는 양곡법 개정안 통과로 '초과 생산 쌀 의무매입제도'가 시행되면 이 같은 손실 규모가 연평균 1조2000억원가량 추가된다는 점이다. 이미 정부는 공공비축양곡제도를 통해 쌀을 시장가격으로 구매해 보관하고 있다가 흉작 등으로 쌀값이 폭등하면 물량을 풀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어 물량을 푸는 일은 거의 없고, 2~3년 보관한 뒤 떡을 비롯한 가공용이나 술 재료가 되는 주정용으로 대부분 헐값에 판매한다. 쌀 의무매입제도를 시행하면 의무매입용 쌀은 판매 순위가 비축미보다도 후순위이기 때문에 가격이 낮은 사료용, 주정용으로밖에 팔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농식품부는 의무매입제도를 도입하면 쌀 1만t 당 286억원의 격리비용(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서 격리비용이란 쌀을 매입·보관하고 가공·출고하는 것을 합친 개념이다.

의무매입제도 시행 땐 쌀 과잉 생산 구조가 고착화할 전망이다. 쌀 농가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일정 수입이 보장되는 쌀농사를 그만둘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022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계산한 쌀 추가 공급량은 2025년 32만3000t에서 2030년 63만1000t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2022년 당시 양곡법을 기준으로 한 계산인데, 새로운 양곡법이 시행되면 쌀 초과 생산은 더 늘어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내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고 있다. 통계청의 '2023년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4㎏에 불과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84년 130.1㎏ 이후 39년 연속 감소 추세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 농가만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법이기 때문에 다른 작물로 전환하는 농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당장 자급률이 떨어지는 밀, 콩, 옥수수가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다. 2022년 기준 국내 쌀 자급률은 104.8%에 이르지만 밀 0.7%, 옥수수 0.8%, 콩 7.7% 등은 자급률이 저조해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의무매입에 따른 재정 부담은 농업 정책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청년 농업인, 스마트 농업 육성 같은 미래 농업 발전과 취약계층 건강 식생활 지원에 사용해야 할 예산 확보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야당이 양곡법 개정안과 함께 강행 처리를 예고한 농안법 개정안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는다. 민주당 안은 특정 농산물이 기준 가격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그 차액을 정부가 지급하는 농산물 가격안정제도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안정제도 적용 품목을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농산물가격안정심의위원회'에서 정하도록 한 점이다. 해마다 여러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사회 갈등과 정쟁으로 비화하는 것처럼 흘러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저 가격을 보장해 주는 품목과 그러지 않은 품목 간에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이해관계를 반영해 품목을 하나둘 늘리다 보면 재정 부담은 더 늘어나게 된다. 생산 쏠림과 공급 과잉 우려도 적지 않다. 정부가 최저 가격을 보장해 주는 품목으로 생산이 쏠려 공급 과잉이 되면 가격이 다시 하락하고 이걸 정부가 재정으로 메워주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정부 재정 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영준 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는 "가격 안정을 위한 제도 도입 시 물량이 초과 공급되는 것에 대해 엄밀하게 논의돼야 한다"며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추가적인 공급이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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