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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바이든 핵심동맹' 떠오른 필리핀 … 돈·기술·기업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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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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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 지연과 물가 상승, 외국인 투자 부진 등에 시달리고 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임기 초부터 해외 순방에 적극 나서면서 '국가 세일즈'를 펼쳤다. 특히 국가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열악한 인프라스트럭처 확충'에 팔을 걷었다. 1억2000만명에 달하는 인구와 풍부한 천연자원, 관광과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BPO) 서비스 산업이 현재 필리핀 경제를 끌고 가는 3대 엔진이라면, 여기에 인프라와 에너지 기반을 확충해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 마르코스 대통령의 구상이다.

이 구상은 최근 대내외적으로 힘을 받는 모양새다. 마르코스 행정부는 지난해 7월 5000억페소(약 11조9000억원) 규모의 국부펀드 '마할리카 투자펀드(Maharlika Investment Fund·MIF)'를 창설하고 운영 방침도 확정했다. 마르코스 행정부는 이 기금을 사회간접자본 확대에 투입해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벌써부터 "부정부패 온상이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지만, 제대로 투자된다면 필리핀 경제 체질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달 사상 처음 개최된 미·일·필 3국 정상회의 성과도 필리핀 인프라 확충에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필리핀은 이 회의에서 경제적 선물 보따리를 두둑이 챙겼다. 수비크만과 클라크, 마닐라, 바탕가스를 잇는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십(PGI) 루손 경제회랑'을 출범한 것이 대표적이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과 대담하면서 "3국은 루손 회랑을 통해 철도, 항만, 청정에너지, 반도체 공급망 등 다양한 인프라 프로젝트에 공동 투자하기로 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에도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회의 직후 현지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앞으로 5~10년간 약 1000억달러(140조원) 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과 글로벌 기업 대표단의 필리핀 방문에서도 굵직한 현안들이 다뤄졌다. 이 방문에는 유나이티드항공과 알파벳(구글 모회사), 블랙&비치, UPS, 보스턴컨설팅그룹, KKR아시아퍼시픽, 벡텔, 페덱스, 마스터카드, 마이크로소프트 등 22개 대기업이 동행했고 10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약속했다. 투자 분야 역시 인공지능(AI), 디지털 기술, 통신 인프라, 태양에너지, 전기차 등 첨단산업들이다.

특히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 다각화 전략기지로 필리핀을 활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방필 당시 러몬도 장관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반도체와 관련된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이 풍부하다"면서 현재 13개 수준인 필리핀 내 반도체 조립과 시험, 포장 생산설비를 2배 수준으로 늘리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 막대한 보조금을 뿌려가며 첨단반도체 설계와 생산기지를 미국 내에 유치하는 한편, 필리핀 등 동남아의 풍부한 인력과 자원을 활용해 후공정을 맡긴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제조업 강국이 되려면 '안정적 전력 확보'가 필수라는 점이다. 마르코스 행정부가 바탄 원전(BNPP) 재가동과 차세대 원자력발전 소형모듈원자로(SMR)에 주목하는 이유다. 바탄 원전은 아버지 마르코스 대통령이 1970년대 오일 쇼크에 대비해 완공 직전까지 강하게 추진했던 프로젝트다. 하지만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이 겹치면서 사업이 중단돼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바탄 원전은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사업타당성조사 등을 협의 중인 단계로, 재가동이 확정될 경우 양국이 모두 윈윈하는 대표적인 협력 사업이 될 전망이다.

다만 갈 길이 멀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에도 연초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7.6%였으나 실제로는 5.6%에 그쳤고, 필리핀 중앙은행은 올해 7% 이상을 전망했다가 지난 4월 초 6%대로 낮췄다. 김동엽 부산외대 아세안연구원장은 "올 들어 조금 안정적으로 접어들고 있긴 하지만 물가 상승률이 높아 국민들이 경제성장에 대해 체감하진 못할 것"이라며 "필리핀은 1% 일부 엘리트에게 높은 경제성장률의 과실이 돌아가는 것이 고질적인 문제인데, 낙수효과가 제대로 나타나도록 강한 리더십과 정책을 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마닐라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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