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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1분만에 허벅지서 허리까지 물 차”...참혹한 합천 대양면 침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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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마을 침수돼 이재민 55명 발생

박완수 경남지사, 마을 찾아 위로

인근 공사현장서 설치한 가도 침수 원인 추정

조선일보

지난 5일 내린 거센 비로 인근 하천물이 넘쳐 침수된 경남 합천군 대양면의 한 마을. 119 소방대원이 물에 찬 마을을 수색하며 대피하지 못한 마을 주민이 있는지 둘러보고 있다. /경남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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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나와보니 물이 벌써 키만큼 찼더라고. 119가 보트 안태워줬으면 못 빠져나갔지.”

6일 오전 경남 합천군 대양면 양산마을에 사는 박모(78) 할머니는 전날 밤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혼자 사는 박 할머니는 전날 밤 자정쯤 마을 주민의 전화를 받았을 때까지도 바깥 상황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잠결에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박 할머니 집 주변엔 물이 가득 찼다. 혼자 사는 박 할머니는 이후 현장에 출동한 119구조대원이 보트를 타고 와 집 밖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노모(60)씨는 “처음에 허벅지 정도 차오른 물이 잠시 옷가지를 챙기러 간 1~2분 사이에 허리까지 차오르더라”며 “집 안에 성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60대 아들은 90 넘은 노모를 업고서 겨우 집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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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전날 내린 비로 인근 하천물이 넘쳐 수해를 입은 경남 합천군 대양면 양산마을의 모습. /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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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전날 내린 비로 인근 하천물이 넘쳐 수해를 입은 경남 합천군 대양면 양산마을의 모습. /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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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마을은 전날 밤 거센 비로 인근 하천물이 범람하면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 한밤에 발생한 탓에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집집이 찾아가거나 연락해 이웃주민을 대피시켰다. 119구조대는 보트 등으로 이동이 불편한 고령의 주민을 구조하면서 부상자·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은 쑥대밭이 됐다. 집 안 가재도구부터 가전제품, 가구 등 성한 것이 없다. 한 주민은 “언제 집에서 다시 생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경남도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11시39분쯤 경남 합천군 대양면 양산마을과 신거리마을 등에 “마을이 물에 잠긴다”는 119 신고가 잇따라 접수됐다.

소방당국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가 물에 잠긴 상태로 차량 진입조차 힘든 상태였다. 소방대원들은 직접 걸어 마을로 진입해 인명 구조에 나섰다. 소방대원이 구조한 주민만 40명. 침수된 집에서 구조대원이 직접 업고 나오거나, 보트로 구조했다. 하루아침에 이재민이 된 주민들은 인근 복지회관과 친인척 집 등에서 뜬 눈으로 밤을 보내야 했다.

사망자는 없었고, 단순 놀람 등의 이유로 2명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곳 마을에 특별히 더 많은 비가 내렸던 것은 아니었다. 경남도에 따르면 마을에 물이 차올랐던 5일 자정 기준 합천군의 누적 강수량은 59.6mm였다. 같은 기준 경남 평균 누적 강수량인 86.1mm보다 적었다. 경남도는 대양면 일대 마을 침수의 원인을 인근 공사현장 때문으로 보고 있다. 양산마을 인근에는 한국도로공사에서 발주한 고속국도 제14호선 함양~창녕 간 건설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 공사 때문에 임시도로(가도)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하천 유속 흐름을 방해하면서 비교적 적은 비에도 물이 넘쳤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도 “수십년 살면서 이 정도 비로 마을에 물이 들어찬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임시도로 하천을 막고 구멍 5개만 뚫어놓으니 물이 넘치지 않겠나”라며 “이건 인재다”라고 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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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전날 내린 비로 인근 하천물이 넘쳐 수해를 입은 경남 합천군 대양면 양산마을을 찾은 박완수 경남지사(왼쪽)와 김윤철 합천군수가 마을 주민을 위로하고, 신속한 복구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경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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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와 합천군은 추가 월류를 방지하기 위해 가도 일부를 철거했다. 6일 현장을 찾은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이번 침수 원인인 교각의 유속 방해 사례가 더 있는지 모든 공사 현장에 대해 조사할 것을 관련 부서에 지시했다. 또 피해를 본 양산마을에 대해서는 앞으로 다가올 장마철에 대비해 철저한 복구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경남도는 이재민들을 합천군 친환경문화센터에서 보호하면서, 주민의 의견을 반영해 먼저 정확한 손해사정을 지원하고, 복구한다는 방침이다.

[김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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