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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만물상] K팝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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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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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가수 노래를 듣기 위해 카세트 테이프, 레코드, CD를 사던 시절이 있었다.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지고 레코드 음이 일그러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오늘날 K팝 아이돌 팬들도 음반을 사지만 듣기 위해서가 아니다. 요즘엔 스트리밍하거나 다운로드받아 듣는다. 앨범에 들어 있는 CD로 음악을 듣는 비율이 5.7%에 불과하다는 조사도 있다.

▶K팝 팬들이 앨범을 사는 주된 목적은 앨범에 딸려 있는 포토 카드를 소장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 K팝 팬들에게 좋아하는 아이돌을 담은 포토카드는 가장 갖고 싶은 굿즈다. 귀한 것은 중고 거래 장터에서 수십만원을 예사로 넘는다. 특정 음반 판매처에서만 살 수 있는 미공개 포토 카드나 팬 사인회에 참석한 이들에게만 주는 한정판 포토 카드 중고품 호가는 100만원대로 치솟는다. 작년 새만금 잼버리에 참석했던 각국 청소년이 받아든 최고의 선물도 BTS 포토 카드였다.

▶이를 아는 K팝 기획사들이 포토 카드 수집욕을 자극하며 앨범 구매를 부추겨 온 게 여러 해 지적받아 왔다. 내용물에 어떤 사진이 들어 있는지 숨겨, 팬들이 좋아하는 사진을 손에 넣을 때까지 사실상 반복 구매를 강요한다. 78종으로 구성된 어떤 포토 카드 세트는 한 앨범에 6장씩만 들어 있다. 특정 아이돌의 사진을 모두 소장하려면 똑같은 앨범을 13장 사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중복 구매 후에 버려지는 앨범이 지난해 1억5000만장을 넘었다. ‘K팝 쓰레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K팝 보이 그룹 세븐틴의 새 앨범이 일본 도쿄의 한 거리에서 상자째로 버려졌다. 발매된 지 하루밖에 안 된 것들이다. 포토 카드만 챙기고 앨범은 방치됐다. ‘지금은 전부 쓰레기봉투에 담겨 치워졌다’는 목격담이 소셜미디어에 돈다. K팝의 부끄러운 뒷모습이다. 중복 판매는 인기 순위도 왜곡한다. 이를 눈여겨본 미국 ‘빌보드 200′이 지난해 여름부터 굿즈를 따로 살 수 있도록 해야만 순위에 반영토록 했다니 K팝 이미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K팝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한 K팝 팬 모임은 가정에 방치된 K팝 앨범 수천장을 수거해 기획사에 돌려주며 K팝 쓰레기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세계 청년들이 K팝에 빠져드는 것은 노래와 칼군무에 매료됐기 때문만이 아니다. K팝 스타들이 노래와 강연 등을 통해 세상에 전하는 선한 메시지도 그들을 사로잡는다. 다음 세대도 듣는 ‘지속가능한 K팝’이 되기 위해서라도 K팝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앨범 쓰레기 문제는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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