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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4 (일)

충성심 높고 복종적인 개, 권위에 저항하는 과학…과학은 개가 아니다[최정균의 유전자 천태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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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정치적 인간의 진화와 과학

경향신문

2022년 5월 김건희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반려견과 시간을 보내는 사진(왼쪽). 지난 16일 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전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서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 항의하던 졸업생이 경호원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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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영장류학자 랭엄이 역설한 인간 도덕 이중성은 진화 과정서 나와…사람은 언어를 통해 정치집단을 구성하고 사회적 규범 형성
야생 공격성 거세되고 권위에 복종 체화한 이들 업고 탄생한 근현대 ‘폭군’ 지도자들…스탈린·히틀러 모범적이며 동물애호가 면모 보여
대통령 한마디에 잘려나간 R&D 예산, 항의한 카이스트 졸업생 ‘입틀막 퇴장’…대통령 곁엔 심기 살피는 ‘우익 권위주의’형 인간들뿐인가

경향신문

본 연재의 첫번째 글에서 소개했던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 하버드대 교수가 쓴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은 인간 도덕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파헤친 책이다. 랭엄 교수가 펼친 “인간은 가장 악하기도 하고 가장 선한 동물이기도 하다”라는 역설적인 주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두 가지 공격성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먼저 반응적 공격성은 상대의 위협이나 공격에 대한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대응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야생의 동물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질이다. 그러나 개, 소, 돼지, 닭같이 소위 가축화된 동물들은 유순하게 진화되어 반응적 공격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의한 가축화 과정에서 공격성이 높은 개체들이 선별되어 버려졌기 때문이다. 즉 자연선택이 아닌 인위적 선택에 의한 진화를 통해 인간에게 길들여진 것이다. 한 예로, 카이스트의 우리 연구실에서 공격성에 관하여 연구했던 ADRA2C라는 유전자는, ‘네이처’에 발표된 스웨덴 웁살라 대학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닭이 가축화되는 과정에서 강한 진화적 압력을 받은 유전자 중 하나였다.

반면 주도적 공격은 사전에 모의되고 냉정하게 계획되어 이루어진다. 유인원 중에서는 주로 인간과 침팬지가 연합을 이루어 주도적 공격을 상습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랭엄의 연구에 따르면, 수렵채집 시대의 인간사회에서는-동물의 세계에서 소위 ‘알파 수컷’과 비슷한-강력한 공격성을 가진 지배적인 ‘알파 남성’에 대항하여 ‘베타 남성’들이 힘을 합해 이러한 형태의 공격을 가하곤 했다. 이렇게 알파 남성을 처단하는 과정이 오랜 진화 과정에서 반복되면서 반응적 공격성의 유전자는 점차 인간집단 내에서 사라져갔다.

이러한 연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마도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랭엄은 인간이 충분히 복잡한 언어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 상호 간에 믿을 수 있는 연합을 결성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정치집단의 탄생을 이루어냈고, 이들에 의해 반사회적 행동으로 규정된 행위에는 사형이나 추방과 같은 처벌이 내려졌으며, 이를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사회적 제도가 발전해왔다. 알파 남성이 지녔던 제한적인 권력이 이제는 정치집단의 무제한적인 권력으로 대체되었고, 전쟁, 학살, 탄압, 착취, 억압 등 집단 외부와 내부를 향한 권력의 남용이 본격적으로 자행되기 시작했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인간은 가축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길들여 정치와 제도에 복종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인간의 근현대 역사에 등장한 폭군과 같은 정치 지도자들도 알파 남성으로서가 아니라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정치집단을 등에 업고 주도적 공격성을 발휘한 이들이었다.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던 구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교도소에 있는 동안 상당한 모범수였다고 전해진다. 항상 조용히 규칙을 따랐으며, 화를 내고 소리 지르거나 욕을 하는 법도 없었다고 한다. ‘킬링 필드’로 악명 높은 캄보디아의 독재자 폴 포트 역시 친절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기억된다. 유대인 수백만명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는, 그의 비서 트라우들 융게에게는 쾌활하고 친절한 마치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굉장한 애견인이자 동물 학대를 혐오하는 채식주의자로서, 최초의 현대적인 동물보호법까지 만든 사람이 바로 히틀러다. 개를 특별히 좋아하는 정치 지도자로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개 식용 반대 입장을 밝혔는데, 결국 임기 중에 개 식용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흥미롭게도, 반려동물로서 개를 선호하는 것에 정치적 성향이 반영된다는 연구 결과가 미국을 중심으로 많이 보고되어 있다.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10개 주 중 7개 주(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 오클라호마, 아칸소, 네브래스카, 아이다호, 미시시피)는 미국에서 반려견 소유 비율이 높은 주에 속한다. 반면 트럼프에게 투표한 비율이 가장 낮은 10개 주 중 8개 주(버몬트, 매사추세츠, 메릴랜드, 뉴욕, 일리노이,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 뉴저지)가 미국에서 반려견 소유 비율이 낮은 곳이었다.

캐나다 요크대학 연구진은 ‘암묵적 연합검사’라는 심리검사 기법을 이용하여 정치적 성향과 반려동물 선호에 대한 더욱 상세하고 정밀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그 결과, ‘우익 권위주의(Right Wing Authoritarianism)’라는 성향이 반려동물로서 개를 선호하는 것과 고양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는 심리와 연관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우익 권위주의’란 정치심리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서, 주로 권위에 대한 복종, 그리고 전통적인 사회 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특히 이 성향의 사람들은 권위 있는 지도자나 기관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지지를 강조하는데, 이러한 권위가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성향이 충성심 높고 복종적인 개에 대한 선호와 독립적이고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에 대한 비호감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좌우를 떠나 권위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행복을 저해한다. 권위주의가 강한 국가들이 행복지수가 낮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유복하면서도 행복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들이 권위주의가 없는 나라라는 사실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지도자가 계속해서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권위주의가 민주주의를 집어삼킨 사건 하나가 바로 필자 주변에서 벌어졌다. 2024년 2월16일 카이스트의 학위 수여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 연설 중 한 졸업생이 일어나 “생색만 내지 말고 R&D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외치자, 비슷한 졸업식 복장을 한 다른 남성들이 곧장 달려들었다. 졸업생으로 위장한 경호원들이었다. 이들은 그 학생을 밀어서 넘어뜨린 뒤 팔다리를 들고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달려든 탓에 학생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했고, 입마저 틀어막히고 말았다. 이 학생은 올해 수조원이 삭감된 R&D 예산에 항의하기 위해 손팻말만 들고 조용히 시위를 할 생각이었으나 팻말을 강탈당하자 할 수 없이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졸업생이 끌려나간 같은 시각, 카이스트 출신의 진보당 후보 또한 선거운동을 하다 대통령 이동 동선 근처라는 이유로 폭력적으로 진압당했다.

윤 대통령은 이 행사에 나타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제가 여러분의 손을 굳게 잡겠다”고 말했지만, 정체도 없는 ‘R&D 카르텔’ 운운하며 일방적으로 예산을 삭감한 그 칼날은 다른 누구 못지않게 바로 이 학생들에게 향했다.

지난 글 <애 키우기 vs 개 키우기>에서도 지적했듯이,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저출산으로 겪게 될 생산성의 저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방편이다. 이번 R&D 예산 대규모 삭감은 외환위기 사태 때에도 연구비를 증가시켰던 대한민국의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로서, 결국 젊은 과학기술 인력의 이탈과 젊은층의 이공계 기피 등 되돌릴 수 없는 장기적 폐해를 유발할 것이다. 과학기술로 자원의 부재를 극복하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던 대한민국의 미래가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간 것이다.

카이스트 강동재 학부 총학생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R&D 예산은 연구를 위한 정부의 투자이자 약속이다. 그런데 이 예산을 줄인다는 건 결국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구나’ ‘이 학문에 대한 중요도를 높게 평가하지 않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우리는 사회 발전을 위해 연구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인데 (충분한 소통 없이) 이렇게 급격하게 변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이 길에 남아있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많이 든다”고 토로한 바 있다.

필자도 참여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의 포상 행사에서 이종호 장관을 대신한 축하 인사말도 가관이었다. 우리 모두가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으나 어려움 뒤에 밝은 미래가 있을 거라며, 젊은이들은 일부러라도 어려움을 찾아나서라는 격려 아닌 격려에 그곳에 있던 학생들이 피식거리며 비웃음을 터뜨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통령의 근거도 없는 R&D 카르텔 한마디에 이렇게 졸속으로 대책을 내놓는 행정부나 민주사회에서의 평화적인 의견 피력조차 수용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과잉 강경 진압을 지휘하는 대통령실을 보노라면, 마치 가축화된 개와 같이 정치에 길들여진 인간 군상의 모습이 겹쳐진다. 평소에 개를 좋아하는 만큼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고 질서를 중시하는 ‘우익 권위주의’형 사람들만을 곁에 두는 탓일까.

그러나 과학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오늘날 자연과학과 공학이 다른 어떠한 학문보다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학의 이러한 성공은 바로 권위에 길들여지지 않는 학문 체계에 기인한다. 권위에 굴복하지 않으며 인간으로서의 과학자를 신뢰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과학자라도 절대적으로 신봉되지 않는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을 뒤집고 상대성 이론을 제시한, 전 세계 물리학계의 슈퍼스타였던 아인슈타인조차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에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고 말았다. 과학사와 과학철학 분야의 기념비적인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토머스 쿤은 과학적 진보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과학의 발전은, 공고화된 체계로서 학계를 오랜 시간 지배하던 ‘정상 과학’이 결국 새로운 발견들로 종말을 맞고,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일컬어지는 혁명에 의해 불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코페르니쿠스가 시작한 지동설 혁명이 정치종교 권력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오와 케플러에 이르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완전히 구축된 것이다.

한국의 과학자들이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연구비 삭감을 감내하고 있지만, 이들이 그렇게 속으로만 인내하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과학을 기어이 정상화시키든, 아니면 대한민국에는 비극이겠지만 다른 어떤 곳에서라도, 이들은 과학혁명을 꿈꾸며 계속 전진할 것이다.

■최정균 교수

경향신문

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최정균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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