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나서는 양승태 前대법원장 - 26일 오후 양승태(가운데) 전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 개입’ ‘판사 블랙리스트’ 등 47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9년 2월 검찰이 기소한 지 4년 11개월 만이다. /장련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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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얼굴 뵙기도 힘들었는데, 마음고생 많이들 하셨을 것 같아요. 만나면 격려라도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현직 부장판사)
지난 2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1심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 35-1부(부장판사 이종민 임정택 민소영)를 두고 법원 내부에서는 “3년동안 수도승 생활을 한 재판부”란 평가가 나왔다.
이 재판부는 이종민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29기), 임정택 부장판사 (30기), 민소영(31기) 부장판사 세 명으로 꾸려진 ‘대등재판부’로 모두 2021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 부임했다. 이 재판부가 3년 가깝게 변동 없이 이 사건을 맡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원래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건은 형사 35부(재판장 박남천)에 배당됐었다. 박 부장판사는 검찰 제출 증거를 꼼꼼하게 따지는 스타일이어서 당시부터 무죄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2018년 2월 부임했던 박 부장판사는 2021년 2월 서울중앙지법 재임기간 3년을 채웠지만 이후에도 재판 기일을 잡아 놓는 등으로 재판에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은 ‘중앙지법 3년 재임’ 원칙에 따른다며 그를 서울동부지법으로 전보시켰다.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진 ‘임종헌 재판부’ 윤종섭 부장판사가 유례없이 6년째 중앙지법에 잔류한 것과 대조적이다. 현재의 35-1부는 박남천 부장판사의 전보에 따라 당시 중앙지법에 새로 전입한 세 부장판사로 꾸려졌다. 세 사람 모두 1974년생(50세)이며,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없다.
이들은 3년동안 중앙지법 공식행사나 비공식 모임에도 거의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댜. 중앙 형사합의부 부장판사들의 경우 같은 재판부가 아니더라도 워크샵이나 심포지움등으로 교류할 기회가 제법 있다고 한다. 한 중앙지법 부장판사는 “35-1부도 선거·경제 전담 재판부여서 관련 사건의 심포지움이 열릴 때 얼굴을 비출 만 한데 거의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송년회 등 법원 공식 행사, 동료들끼리의 회식 자리에서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또다른 판사는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의 특성상 동료·선후배 판사들이 피고인이자 증인이어서 재판부로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엄격하게 처신한 것 같다”고 했다.
유일하게 이들을 볼 수 있는 곳은 법원 내 판사 전용 구내식당인데 이곳에서도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고 한다. 한 부장판사는 “다들 얼굴이 어둡고,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진 표정일 때가 많았다”고 했다.
정치인이나 재벌 등의 거물급 형사사건을 맡는 중앙지법 형사합의부는 과거에는 ‘엘리트 코스’로 통했지만 현재는 ‘기피부서’로 통한다. 내용이 어렵거나 정치세력들로부터 공격받기 쉬운 사건들을 맡지만 김명수 대법원에서 고법부장 승진 제도 등이 없어지면서 그에 따른 보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앙지법 형사합의부는 2년만 재임하면 같은 법원 내 다른 재판부로 옮길 수 있다.
그러나 35-1재판부는 작년 2월 ‘재임 2년’을 맞았지만 모두 잔류를 선택했다. 그 결과 판결문만 3200페이지, 기소 후 선고까지 기간만 1810일이 걸린 역대급 사건의 1심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한 판사는 “법대에서 선후배, 동료 판사들의 법정 증언을 듣고 사법부 수장의 유무죄를 판단해야 하는 이런 사건은 판사로서는 정말 맡지 않았으면 했었을 것”이라며 “그 부담을 다른 동료들에게 떠넘기지 않기 위해 재판부가 3년동안 수도승 생활을 하다시피 하며 마무리를 지은 것 같다”고 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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