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서울대 열대의학교실 교수
지난 8일 서울대 의과대학 연구실에서 김주현 교수가 흡혈 절지동물 인형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모기, 초파리, 이, 사면발니, 참진드기 등의 인형이다. 김 교수는 "귀엽지 않은가. 나에게 흡혈 곤충은 연구실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태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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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연구실에서 만난 김주현(37) 서울대 의과대학 열대의학교실 교수는 흡혈 곤충을 연구하는 것에 대해 “‘특이한 거 한다’는 말을 학계에서 자주 듣는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지난해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온 빈대가 갑작스럽게 전국에 출몰해 소란이 일어났던 시기에 흡혈 곤충 전문가로 주목받았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김 교수가 박사 후 과정 지도 교수로부터 ‘빈대 공주(bedbug princess)’로 불렸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흡혈 곤충의 대모가 나라의 영웅이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김 교수는 국내 유입 빈대가 기존에 주로 사용된 살충제에 내성이 생겼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를 대체할 살충제를 제시하는 논문 두 편을 잇따라 발표했다. 정부에서는 해당 연구를 바탕으로 빈대 소탕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솔직히 말하자면 주로 연구하는 곤충은 머릿니, 사면발니, 모기인데 가욋일처럼 맡았던 빈대 연구가 이렇게 주목받을 줄은 몰랐다”며 “국내에도 여전히 빈대, 이, 모기 등 흡혈 절지동물(곤충류 등 몸이 마디로 돼 있는 생물)을 매개체로 한 질병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 응용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곤충학 석박사통합 과정까지 마친 김 교수는 고교 재학 때 전교에서 ‘이과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생물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더니 ‘지방대라도 의대나 약대가 낫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임상 의사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생물학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는데, 현재는 의대에서 기초 의학을 연구하게 됐다”고 했다. 이과 전공으로 장래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김 교수는 “본인이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노력하면, 결국에는 여러 방향으로 길이 열린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대학원 재학 당시 지도 교수였던 이시혁 서울대 교수가 흡혈 머릿니를 연구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을 때 바로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당시 연구실 동료들은 꿀벌이나 농촌 해충을 연구했는데 저는 질병 매개체로서 흡혈 곤충에게 관심이 갔어요. 흡혈 곤충으로 인한 질병이 많기 때문에 왜, 어떻게 질병을 옮기는지 궁금했거든요.”
김 교수는 머릿니와 몸니의 차이를 다룬 박사 학위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이를 수백 마리 키우는 인공 사육 시설을 만들기도 했다. 인간의 피만 먹는 이의 특성상 매일 신선한 수혈 팩을 준비해야 했는데, 초기에는 집단 폐사를 막기 위해 직접 자신의 피를 뽑아 먹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집에 모기가 있으면 싫고 야외 활동을 할 때 진드기 기피제도 열심히 뿌리지만, 연구 대상으로서 흡혈 곤충들은 자식 같은 느낌”이라며 “연구할 것이 무궁무진한 흡혈 곤충의 세계는 작은 우주 같다”고 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의대가 임용한 첫 번째 의용(醫用) 곤충 학자다. 국내 의대 교수 중 매우 드문 흡혈 절지동물 연구자로 꼽힌다. 그는 “기후변화로 모기, 진드기 같은 전염병 매개 곤충이 점점 늘어나고 출몰 시기도 길어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국내외로 절지동물 매개성인 감염병들이 지속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살충제에 저항성이 생긴 매개체가 점차 늘어나는 만큼 흡혈 곤충이 병원체와 상호작용하고 질병을 옮기는 근본적인 기작을 알아야 해당 감염병 확산을 막을 수 있다”며 “흡혈 곤충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김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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