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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9 (목)

[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진짜 ‘서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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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초등학생인 큰애와 극장에 가서 <서울의 봄>을 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도 셋업 과정이나 주인공의 고진감래 등 덜 흥미롭거나 때로는 지겨운 장면이 있게 마련이다. <서울의 봄>에는 그런 장면이 거의 없다. 뽀로로 캐릭터를 만들 때, 뭘 더하는 게 아니라 뭘 뺄지가 주된 디자인 포인트였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이태신 부인이 나왔을 때, 그녀의 슬픈 후일담이 좀 나올까 했었는데, 일절 없었다. 큰물이 흘러가는데 걸리적거리는 소위 ‘이물질’이 거의 없는 편집이 기가 막혔다. 장면 전환도 빠르고, 대사들도 길게 안 준다. 생각할 틈이 없이 숨가쁘게 장면들이 전환되었다. 얘기는 ‘올드’하더라도 편집만큼은 모던했다.

청년들 공정 질문에 엇갈린 성패

영화 보고 며칠이 지났는데, 몇 장면이 계속 생각이 났다.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감정은 진짜 오랜만인 것 같다. 같이 간 큰애도 재미있게 봤는지, 영화의 몇 장면을 성대묘사했다. 사실 <서울의 봄>은 이순신 얘기처럼 온 국민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극명하게 나뉠 얘기다. 영화로서는 약점이다. 그런 약점을 극복하게 만드는 것은, n차 관람이 가능할 정도의 몰입도라고 할 수 있다. 김성수의 영화는 <무사>를 제일 재미있게 봤었다.

얼마 전에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했던 얘기를 책에 넣어야 할 일이 생겨서, 다시 한번 사건을 돌아다보는 일이 있었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고, 돈도 실력이라는 얘기였다. 이 짧은 몇 개의 문장이 한국의 청년들을 격발시켰고, 결국 대통령 탄핵으로 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경제 공동체라는 논리가 과연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탄핵이 되었지만, 그 안에 흐르는 가장 큰 에너지는 청년들의 분노였다.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 하나를 짚으라면 정유라의 SNS 문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점점 더 ‘세습 자본주의’ 형태로 바뀌어가면서 부모의 돈을 간편하게 물려받는 것에 대한 분노를 단순히 진보적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여기에 역사적인 점 하나가 찍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정서를 가진 문재인 정권과 청년들이 멀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점의 전조는 평창 동계올림픽 때 있었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는데, 그러면 누군가는 출전이 불가능해진다. 이게 과연 공정한 것이냐, 그런 논쟁이 벌어졌다. 문재인 정권은 이걸 사소한 논란 정도로 간주했지만,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청년들의 분노는 예상치를 넘어섰다. 정유라에게 분노했던 청년과 이 청년은 다른 청년일까?

역사적인 두 번째 점은 조국 사건이다. 진보 쪽에서는 검사권력에 시선을 두었지만, 청년들은 부모의 힘에 더 시선이 갔다. 한국은 완전히 두 쪽으로 갈렸다. 조국을 쫓는 검사권력에 눈이 간 조국파와, 진보도 힘 있으면 자식 교육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생각하는 청년들 사이에는 접점이 없었다. 아주 큰 사건이 되었고, 문재인 정권은 재창출되지 않았다. 청년들은 이준석을 따라 국민의힘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그때의 검사들은 결국 스스로 정권이 되었다. 공정이라는 청년들의 질문 앞에서, 한쪽은 몰락했고, 또 다른 쪽은 흥했다.

올드한 주제에 청년들 핫한 반응

크게 보면, 한국에서 청년들이 크게 움직인 것은 이 두 번이다. 그리고 세 번째 점을 영화 <서울의 봄>에서 우리가 보는 중이다. 영화 촬영 직후 김성수 감독은 “젊은 관객이 극장에 많이 와야 할 텐데 걱정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아마 제작사 측도 지금과 같은 현상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올드’한 감독이 ‘올드’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청년들이 ‘핫’한 반응을 보였다. 코로나19 이후로 잔뜩 위축된 한국 영화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전두광에 대한 분노와 함께 너무나 비현실적인 영웅 이태신의 신선함이 폭발했다. 행주대교 위에 홀로 선 이태신은 할리우드에는 없는 힘없는 영웅이다. 그 영웅의 패배는 분노 게이지를 폭발시켰다.

하나회와 검사집단을 바로 연결하는 것은 과도한 정치적 해석이다. 그래도 사회적 파장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총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이라, 청년들이 본 <서울의 봄>이 그야말로 해석 투쟁 속으로 들어갔다. 출발은 작았지만, 결국은 엄청난 충격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얼른 영화 보고 “재미있게 잘 봤다”고 한마디 남길 것 같다. 김영삼이 이미 보수를 대표해서 정리한 사건이다. 한국 보수가 이미 법원 판결까지 지난 세기에 다 끝난 전두환을 새삼 옹호할 이유는 없다. 어정쩡하게 ‘좌빨’ 타령하다가는 내년 봄에 진짜 서울의 봄이 온다.

경향신문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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