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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100년 걸려 이룬 ‘세계 3대 금융센터’ 홍콩의 씁쓸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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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의 온차이나]

홍콩경제무역대표부

미 의회, 외교특권 박탈 추진

시진핑은 “상하이 육성”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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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주미홍콩경제무역대표부 입구. /V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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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원 외교위원회가 11월 29일 홍콩경제무역대표부(HKETO)에 부여해온 특권과 면책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홍콩대표부는 그동안 미국 내에서 국제기구와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아왔죠.

이 법안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런 외교적 특권을 부여하는 게 적절한지를 판단해 의회에 통보하라는 내용을 담았는데, 사실상 폐지 쪽에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중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지 않고 사실상 홍콩을 통합했는데, 예전처럼 특별 대우를 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이 법이 상·하 양원을 통과해 시행된다면 글로벌 금융 허브이자 중계무역항인 홍콩의 위상은 뿌리째 흔들릴 겁니다.

홍콩 경제는 2020년 보안법 시행 이후 외자와 엘리트 인력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 있어요. 11월28일에는 홍콩 증시의 항셍지수가 31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 증시의 가권지수에 추월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요즘 ‘국제금융센터 유적지’라는 말이 유행이에요. 국제금융도시로서 홍콩의 위상이 이미 과거의 일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중국에 통합된 홍콩, 외교 특권 못 준다”

홍콩은 해외에 14개 경제무역대표부를 두고 있는데, 미국에는 워싱턴DC와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3곳에 있어요. 미 의회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홍콩경제무역대표부에 미국 내 국제기구에 준한 면책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국제통화기금(IMF) 등 같은 국제기구처럼 압수수색이나 재산 몰수 등을 당하지 않을 권리와 일부 조세를 면제하는 등의 특권을 부여한 거죠.

미 하원 외교위가 통과시킨 법률은 홍콩에 이런 특권을 부여하는 게 적절한지를 바이든 대통령이 판단해 30일 내에 의회에 설명하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 폐쇄하고,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그 근거를 의회에 제시하라는 겁니다. 근거를 제시해도 의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홍콩경제무역대표부는 180일 내에 폐쇄 수순을 밟게 된다고 해요.

이 법안은 공화당 소속 크리스토퍼 스미스 의원이 발의했는데, 민주당 의원 4명과 공화당 의원 2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습니다. 초당적인 법안이죠. 하원 외교위 표결 결과는 39대0으로 만장일치였습니다.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당)도 “홍콩은 더는 자치권도 없고 민주적이지도 않다”면서 “홍콩대표부가 누려온 외교적 지위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더군요.

홍콩무역대표부는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벨기에, 일본, 호주, 캐나다 등지에도 있습니다. 서울에도 사무소가 있죠. 미국에서 이 법이 통과된다면 다른 서방 국가에서도 비슷한 조처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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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9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를 통과한 홍콩경제무역대표부인증법 초안. /미 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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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상하이 국제금융센터로 키워야”

홍콩은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 독립관세구역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국제올림픽위원회 등 국제기구에도 중국과 별도로 가입해 있는데, 이런 지위 역시 흔들릴 수 있어요. 이런 지위를 인정받는 근거는 1997년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할 때 양국이 합의한 중영공동성명입니다. 50년간 중국 대륙과 다른 홍콩의 독자적인 체제를 유지한다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내용이 담겨 있죠. 중국이 이런 약속을 어기고 23년 만에 홍콩을 통합한 만큼, 홍콩의 국제적 지위도 위태로워진 상황이 된 겁니다.

마침 이 시점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상하이를 방문했어요. 11월28일부터 12월2일까지 상하이를 찾아 선물거래소, 과학기술혁신원 등지를 둘러봤습니다. 일각에서는 경제 살리기가 급한 시 주석이 상하이를 찾아 외자 이탈 막기에 나선 것 아니냐고 분석했는데, 시 주석의 현지 발언을 보면 초점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어요.

시 주석이 상하이에서 내놓은 핵심 키워드는 ‘5개 중심 건설’이었습니다. 상하이를 국제경제중심, 금융중심, 무역중심, 항운중심, 과학기술혁신중심으로 키우라는 것으로 사실상 상하이로 홍콩을 대체하겠다는 거죠. 반간첩법 시행 등으로 불안해하는 외국 기업들을 안심시키는 발언은 거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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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8일 상하이선물거래소를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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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항셍지수, 대만에 추월 당해

중국에 통합된 홍콩은 이미 국제금융센터로서 기능을 잃어가고 있어요. 홍콩 증시의 항셍지수는 11월28일 16993.44로 같은 날 대만 가권지수(17370.56)에 추월을 당했는데, 3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홍콩은 외자와 인재들이 이탈하면서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데 비해, 대만은 반도체 기업 TSMC가 선전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죠.

홍콩 증시의 일일 평균 거래액도 급감하는 추세입니다. 2021년 1670억 홍콩달러였던 하루평균 거래액은 올해 1~6월 1160억 홍콩달러로 줄었고, 올 10월에는 하루평균 거래량이 700억 홍콩달러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하루 거래 규모가 미화 100억 달러도 안되는 거죠. 홍콩과 중국 부호들의 개인 자산도 싱가포르 등지로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에 근무하는 한 중국 전문가는 11월 중순 웨이보(微博) 이런 글을 올렸어요. “홍콩 증시 일일 평균 거래액은 겨우 100억 달러를 넘기는 수준이고, 전체 종목의 53%가 거래량이 거의 제로이다. 한때 세계 3대 증시가 이 지경이 되다니! 세계 3대 금융센터가 되는 데 100년이 걸렸는데, ‘금융센터 유적지’가 변하는 데는 채 5년도 안 걸리는구나.” 이 글을 계기로 중국 국내외에서는 ‘금융센터 유적지’라는 말이 대대적으로 유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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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동방의 진주였던 홍콩이 미국 주재 경제무역대표부 폐쇄되면서 국제금융센터 유적지로 변해가는 걸 안타까워하는 내용을 담은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의 글. /웨이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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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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