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1명 사살할 때 민간인 최소 2명 숨져”…이 정도 비율은 괜찮다는 이스라엘, 피란민 몰린 남부 진격 코앞

5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다친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 있는 나세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대원 1명이 사망할 때마다 약 2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이스라엘군이 밝혔다. 이스라엘이 피란민이 몰려 있는 가자지구 남부의 도로와 통신을 차단한 후 본격적인 군사작전에 돌입함에 따라 민간인 피해는 더 커질 전망이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는 4일(현지시간) 외신들이 앞서 이스라엘 관리를 인용해 지난 10월 7일 개전 이후 사살된 하마스 대원이 약 5000명이라고 보도한 내용이 맞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현재까지 가자지구 내 누적 사망자가 약 1만6000명이라고 집계했는데, 이에 따르면 사망자 중 하마스 대원 대 민간인 비율은 1대 2가 된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하마스 대원 수천명”을 사살했다고만 밝히며 구체적인 숫자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가 “(보도된) 수치가 대략 맞다”고 답해, 최소 2배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내세운 탓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조나단 콘리쿠스 중령은 “인간 방패를 내세운 테러리스트 집단과 시가전을 벌인 점을 고려하면 이 비율은 긍정적이다. 이런 비율은 전례가 없다”고 CNN에 밝혔다. 그는 “우리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투에 앞서 사전 경고를 제공한다”면서 “하마스를 격퇴하면서도 민간인 사상을 줄일 선순환을 만드는 방법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경 도시에 이미 수만명 몰려…진군하는 이스라엘·텅 빈 마을

이스라엘 전차와 장갑차들이 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 북쪽 부근에 집결한 모습이 위성사진에 포착됐다. 이스라엘군은 4일 칸 유니스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이 있을 것이라며 주민들의 대피를 촉구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 측은 “다가오는 전쟁 단계에서는 그 비율이 훨씬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미 이스라엘군이 남부에서의 지상작전을 본격화한 상황에서 민간인 사상자 비율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전쟁 시작 이후 이스라엘군은 북부 지역 소개령을 내려 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약 70%를 남부 지역으로 몰아넣었다. 이스라엘은 남부 지상작전을 앞두고 이날 남부 최대 도시 칸유니스의 약 20%에 해당하는 구역과 주변 지역에 소개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가자지구 주민에 허용된 공간이 4분의 1 이상 줄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피란민들에게 칸유니스보다 더 남쪽인 국경도시 라파로 이동하라고 지시했다. 5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지난 이틀 동안 라파에 수만명이 도착했다. 라파의 대피소가 수용 능력을 훨씬 초과했기 때문에 이들 대부분은 길거리 등에 텐트를 쳤다”고 전했다.

사실상 대피가 불가능한 인구 밀집 지역에서 엄청난 인원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다보니 대혼란도 빚어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수천개 구역으로 나눈 지도에 위험 지역을 표기해 주민들에게 살포하고 있는데, 4일 공개한 지도에선 하루 전에 소개를 명령했던 지역으로 가라고 안내했다.

게다가 소개령 전단 중 일부는 QR코드를 스캔하는 방식이지만, 5일 현재 가자지구 전역은 통신이 두절된 상황이다. 이스라엘군이 연료 반입을 차단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휴대폰을 충전할 전력도 없다. 사실상 접근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대피를 안내하고 있는 셈이다. CNN은 “칸유니스 주민들에게 대피 지도를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시도했으나 통신 연결이 나빠 실패했다”고 전했다.

현재 이스라엘 지상군은 가자지구 남북을 관통하는 살라 알딘 도로를 따라 이동하며 남부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살라 알딘 도로에 인접한 칸유니스 북부에서는 폭격과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현지에서는 이스라엘이 대피 지역으로 안내했던 곳도 공격을 받았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스라엘이 소개령을 내린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 주민들이 4일(현지시간) 이집트 접경 지역인 라파로 피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구호 창고 비우라” 통보한 이스라엘…해수로 지하터널 침수 계획도

남부의 인도주의적 상황은 시시각각 악화하고 있다. 한 구호활동가는 지난 며칠 동안 남부지역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엄청난 규모였다”면서 “주민들이 피란을 떠나 구호물품은 거의 전달되지 못했고 상점에 음식도 없다”고 AP에 전했다.

그런 와중에 이스라엘군이 남부의 구호 창고를 비우라고 세계보건기구(WHO)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4일 “이스라엘군으로부터 지상작전으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될 테니 24시간 내로 가자지구 남부의 의료 창고에서 보급품을 치우라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이 지시를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엑스(옛 트위터)에 밝혔다.

또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에 설치한 지하터널(땅굴)에 바닷물을 주입해 침수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지난달 중순 가자지구 알샤티 난민캠프 북쪽으로 4㎞ 가량 떨어진 지점에 바닷물을 끌어오기 위한 대형 펌프 최소 5대를 설치해 둔 상태다. 각 펌프는 지중해에서 해수를 시간당 수천㎥ 끌어와 몇주 내로 지하터널을 물에 잠기게 할 수 있다.

지하터널이 정확히 어떻게 상하수도로 이어지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는 가뜩이나 파탄 난 가자지구 식수 공급에 악영향을 끼치리란 우려가 나온다. 원래도 이스라엘에 크게 의존했던 가자지구 식수는 전쟁 이후 공급이 거의 끊겼으며 해수 담수화 시설도 작동을 멈췄다. 이스라엘이 미국에 이러한 구상을 전한 뒤 미국에서도 효과성과 환경에 미칠 영향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미국 관계자는 WSJ에 전했다.

가자지구가 ‘종말론적 상황’, ‘아동들의 무덤’이 됐다는 등 국제사회 비판이 이어졌다. 국제적십자위원회 미르자나 스폴야리치 위원장은 가자지구를 방문해 “민간인이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다. 포위 공격이 진행 중인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대응 방안도 없다”고 지적했다.

칸유니스에서 피란민이 된 한 주민은 “안전한 지역이라면 텐트를 비롯한 필수품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가자지구에는 안전한 지역이 없다. 아이들을 데리고 빗속에서 자야 하는가”라고 알자지라에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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