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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中의 굴욕… 소국 리투아니아 제재하려다 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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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아닌 ‘대만’대표부 허용하자 경제 보복… 2년 만에 철회

조선일보

2021년 11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개설된 대만대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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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과 협력을 강화한 유럽 국가 리투아니아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가해졌던 중국의 경제 제재가 2년 만에 풀렸다. 인구 280만명의 소국이 14억 대국과의 기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국의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가 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가브리엘리우스 란트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27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리투아니아에 가했던 무역 제재를 해제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과 리투아니아가 교류 재개를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무역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의한 외교적 절차에 따라 리투아니아에 대한 경제적 압박 조치 대부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중국 세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리투아니아의 대(對)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한 1억1000만달러를 기록하며 회복세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가 “리투아니아를 파리 잡듯 벌해야 한다”(2021년 11월)고 악담을 퍼부을 정도로 눈엣가시처럼 여겼지만, 2년 만에 기세가 완전히 꺾인 모습이다.

두 나라의 갈등은 2년 전 불거졌다. 중국과 수교하고 있는 대부분 국가들은 대만과의 비공식 교류를 위해 대사관 역할을 하는 대표부를 두고, 통상 앞에는 ‘대만(Taiwan)’ 대신 수도인 ‘타이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대만이 자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주장을 감안해 나라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2021년 11월 리투아니아가 수도 빌뉴스에 ‘주(駐)리투아니아 대만 대표부’를 설립하자 중국이 격하게 반발했다. 유럽 국가 중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부 설립을 승인한 건 리투아니아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한, 터무니없는 행위로 앞으로 벌어질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리투아니아의 몫”이라며 보복을 개시했다. 주리투아니아 대사를 본국으로 송환하고, 리투아니아 주재 중국 공관을 대표처로 격하했다. 중국 세관은 리투아니아를 세관 전산 시스템의 수입 대상국 목록에서 삭제했다. 양국 간 기술 교류·협력도 중단됐다.

이런 중국의 전방위적 압박에 리투아니아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2021년 12월 주중 대사관 전원을 본국으로 철수시켰고, 중국의 제재를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에 어긋나는 부당한 협박”이라며 유럽연합(EU)의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대만과의 관계는 보란 듯 오히려 강화했다. 1년 뒤엔 대만에 자국 대표부를 개관했다. 올해 1월에는 리투아니아 의원 대표단이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 총통과 만나는 등 고위급 교류를 이어갔다. 지난 9월에는 타이난에 대만·리투아니아 초고속 레이저 개발 센터를 열었고, 지난달에는 리투아니아 입법부 수장인 빅토리아 치밀리테 닐슨 국회의장이 대만 입법원(국회 격)에서 연설했다.

리투아니아에 중국발 타격이 없지는 않았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올해 6월 본지 인터뷰에서 “대중국 수출이 무려 80%나 감소해 큰 고통을 겪었지만, 위기에서 벗어났다.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 다변화는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은 미·중 경쟁 속에서 유럽과의 관계 개선이 급해지고, 리투아니아와 대만의 관계가 깊어지자 경제 보복을 철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 합병되는 등 오랜 외세 침탈을 경험했던 리투아니아는 소련 시절인 1990년 3월에 독립을 선언했다. 이는 소련 붕괴의 시작을 알린 발트 3국(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의 대소(對蘇) 항쟁으로 이어졌다. 소련 붕괴로 주권을 회복한 뒤 나토와 EU에 가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에는 적극적으로 러시아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다. 올해 7월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나토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란트베르기스 장관은 양국 관계의 해빙을 위해 중국에 굴종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리투아니아에 설립된 대만 대표부의 명칭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대만 대표부 문제는 중국과 논의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리투아니아는 대만과의 경제 협력 강화에 따른 이익도 챙기고 있다. 미국의소리 방송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대만과 리투아니아의 무역 규모는 50% 늘었고, 리투아니아 IT 회사인 텔토니카는 2027년까지 대만 기술을 이용해 반도체를 생산하는 협약을 대만 연구소와 체결했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다만 중국이 내년 리투아니아 대선을 노리고 사전 작업에 나섰을 가능성도 크다. 유럽안보정책가치센터(EVC)의 유럽·대만 관계 전문가인 마르신 제르제프스키는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내년 5월 리투아니아 대선에서 대만과의 관계 개선에 관심이 적은 사회민주당 등 정당이 정권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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