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공포정치로 "악의 얼굴" "칸 유니스의 도살자"라 불려
하마스 창설 초기부터 주축 역할…10월 7일 기습 테러 주도해
가자지구의 한 집회장에서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가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알카삼 여단 전투원의 아이에게 총을 쥐어주고 있다. 2021.05.24/ ⓒ AFP=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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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습격을 주도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62)가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에 의해 제거된 것으로 전해졌다.
신와르는 전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지난 8월 이란에서 암살되자 그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하니예보다 더 강경파로 분류되는 그는 이스라엘이 작성한 하마스 고위급 암살 명단에 남은 마지막 인물이었다.
추적과 암살을 피해 신와르는 지난 1년의 대부분을 가자지구 지하 터널에 숨어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경호원들과 함께 오직 극소수의 인물들과만 소통했다고 BBC는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신와르가 하마스에 억류된 이스라엘 인질을 '인간 방패'로 쓸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정보기관 신베트 소속 관계자는 그가 매일 폭약을 들고 다니며 주변에 최소 20명의 인질을 데리고 다닌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스라엘군은 신와르가 사망한 건물이 지난 8월 자국의 인질 시신 6구가 발견된 땅굴에서 불과 수백 미터 거리라고 했다.
"악의 얼굴" "칸 유니스의 도살자" 등으로 불린 신와르는 1962년,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난민촌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가족은 아랍-이스라엘 전쟁 중 팔레스타인이 모여 살던 알-마즈달(現 이스라엘 아슈켈론)에서 쫓겨나 난민이 됐다.
이후 칸유니스 남자중학교를 거쳐 가자지구 내 이슬람 대학에서 아랍어 학사 학위를 받았다. 열 아홉살이던 1982년에는 '이슬람 운동' 혐의로 이스라엘에 처음 체포됐다가 1985년 다시 한번 붙잡혔다. 이 무렵 그는 하마스를 창시한 셰이크 아메드 야신의 신뢰를 얻었다.
야신의 후광을 등에 업은 신와르는 1987년 하마스 창설 2년 후,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로 보안 부문 수장을 맡는다. 주로 이스라엘에 협력한 혐의를 받는 팔레스타인인을 추적하고 잔혹하게 처벌했는데, 산 채로 사람을 묻기도 했다.
워싱턴 중동 정책 연구소 소속으로 과거 신와르를 4번이나 인터뷰한 에후드 야아리는 신와르가 "주변에 추종자, 팬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라며 "그저 그를 두려워하고 싸움을 걸려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신와르는 1988년,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살해할 계획을 세웠다가 같은 해 체포됐다. 그는 팔레스타인인 12명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 및 4번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때부터 2011년까지 긴 수감 생활이 시작됐다. 독방에 갇혔던 시간은 그를 더 급진적으로 만들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수감 평가에서 신와르를 "잔인하고 권위적이며 영향력 있고, 인내심이 뛰어나다"며 "감옥 안에서도 다른 수감자들과 비밀을 지킨다. 군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신문을 읽고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히브리어를 완벽히 익혔다.
옥중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신와르는 2005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기 전 팔레스타인 가옥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장면을 "마치 먹이의 뼈를 부수는 괴물" 같았다고 묘사했다.
2011년, 신와르는 하마스에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 군인 길라드 샬릿과 포로 교환 차원에서 석방됐다. 이스라엘 국방 및 안보 관계자들은 이때 신와르를 풀어준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나중에야 후회했다.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이스라엘 수감 생활 중 석방된 야히야 신와르가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정치 지도자와 포옹하고 있다. 2011.10.18/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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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로 돌아온 신와르는 곧바로 지도자급 대우를 받았다. 2013년에는 가자지구 하마스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된 데 이어 2017년에는 정치국 위원장이 됐다. 조직원들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정도의 잔혹한 규율을 강요했다. 그는 2015년 미 국무부가 발표한 '특펼 지정 세계 테러리스트'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 연구에 따르면 신와르는 정치 활동을 통해 하마스를 지원하는 데 경계심을 갖고 있던 이집트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란으로부터 계속해서 군사 자금을 유치했다.
이스라엘과의 갈등이 더욱 깊어진 것은 2021년부터다. 2021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있는 신와르의 집과 사무실을 표적으로 공습을 실시했고, 이에 신와르는 2022년, TV 연설을 통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하도록 사람들을 부추겼다. 그리고 급기야 2023년 10월 7일, 1200여 명이 숨지고 251명의 인질이 억류되는 '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이 공격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었으며, 가자지구뿐만 아니라 레바논까지 전선이 확대되는 시발점이 됐다.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동쪽의 국경지대에서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가 시위 중 검지를 치켜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3.30/ ⓒ AFP=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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