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로’로 장편 연출 데뷔한 변호사 출신 홍용호 감독. 메리크리스마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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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 끔찍하게 살해당한다. 현장에 있던 아내(유다인)가 용의자로 체포된다. 그를 찾아온 국선변호인 정민(강민혁)에게 여자는 본인이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비밀을 숨긴 듯 진실을 밝히는데 뜻이 없어 보인다. 열의를 가지고 무죄를 입증하려던 정민은 점점 수렁 같은 상황에 빠져든다.
20일 개봉한 영화 ‘폭로’는 순제작비 3억원으로 만든 저예산 영화지만 탄탄한 미스터리 구조와 반전의 놀라움을 안기는 법정 스릴러다. 많은 법정 드라마가 있지만 재판 과정에서 벌어지는 강렬한 반전에 설득이 되는 이유는 현직 변호사인 홍용호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의 개연성 때문일 것이다. 지난 15일 한겨레와 만난 홍 감독은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이라서 첫 장편 연출작으로 법정드라마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 ‘폭로’. 메리크리스마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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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래전 어느 미국 여성 판사에 대한 짧은 외신 기사를 보고 ‘폭로’의 얼개를 짜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밝힐 수는 없지만 법정에서 뜻밖의 진실이 드러나는 상황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영화를 좋아해 201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을 공부하며 ‘배심원들’ ‘더 멋진 인생을 위해’ 등의 단편을 만들었지만 그는 2000년부터 현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다. 주 전공은 영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기업 인수 합병, 기업 자문 등 경제 분야다. “영화를 좋아했지만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연출 결심을 한 건 아니고요, 주변에 영화 쪽 일하는 동료들도 있고 시나리오 자문도 종종 하면서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죠.” 홍 감독은 살인 용의자를 둘러싼 진실 공방을 다룬 ‘침묵’(2017)과 ‘증인’(2019)의 각색에 참여하기도 했다.
‘폭로’는 미궁에 빠진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법정 스릴러이면서 동시에 젊은 변호사의 성장담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진실을 추적하는 젊은 변호사라면 혈기 넘치는 캐릭터가 클리셰처럼 등장하지만 정민은 시종 차분해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인다. 정민이 담담하게 “변호사란 흔히들 다른 사람을 옹호하고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만나기 전까지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몰랐다”고 독백하는 장면에서는 변호사의 윤리에 대한 가볍지 않은 문제의식이 전해진다.
“바람직한 변호사상, 이런 걸 그리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 이런 캐릭터를 제가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영화 ‘다크 워터스’에서 마크 러팔로가 연기했던 변호사처럼 해야 하는 일이다 싶으면 묵묵히 자기 생각대로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폭로’에도 “국선변호인이 그런 거까지 하는 건 오버다”라고 하는 대사가 나오지만 그냥 이게 내 일이니까 한다, 그런 인물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본인도 그런 변호사냐는 질문에 홍 감독은 “저는 아닌 것 같고”라며 웃었다.
영화 ‘폭로’. 메리크리스마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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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개봉을 준비할 때부터 변호사 일은 휴업상태로, 차기작 준비로 바쁜 당분간은 ‘주경야독’ 대신 영화 일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창동 감독의 모든 작품을 좋아한다.
“현실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드라마를 좋아해요.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저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예요. 제가 익숙한 법정 이야기를 포함해 다양한 소재와 장르에 도전하며 생각의 경계를 깨는 작품을 써나가고 싶습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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