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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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를 원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었다면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았어도 스토킹 범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하급심 판결이 엇갈렸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수십 차례 전화를 걸어 ‘부재중 전화’ 문구를 남긴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10월 알고 지내던 여성 B씨에게 1000만원을 빌려달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고 통화를 차단당했다. 그러자 A씨는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를 빌려 B씨와 한 차례 통화했고, 이후 28차례 전화를 더 걸었지만 B씨가 받지 않아 B씨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 문구가 남았다. 이 밖에도 A씨는 B씨에게 ‘찾는 순간 너는 끝이다’ ‘다 죽인다’ 등의 문자메시지도 여러 차례 보냈다고 한다.
1심과 2심은 A씨의 ‘문자메시지 전송’은 모두 유죄로 봤다. 그러나 A씨의 ‘부재중 전화’에 대해서는 판단이 달랐다. 1심은 스토킹 범죄라고 했지만 2심은 아니라고 한 것이다. 쟁점은 A씨가 스토킹처벌법에 규정된 ‘전화를 이용해 음향·글·부호를 보내는 행위’를 했는지 여부였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전화를 걸어 B씨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더라도 B씨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음향을 보냈다고 볼 수 없고, B씨 휴대전화에 표시된 ‘부재중 전화’ 문구는 전화기 자체의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해 A씨가 보낸 글이나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2심 판단은 2005년 대법원이 “전화 벨소리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송신된 음향이 아니므로 공포심 등을 유발해도 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되기 전이었고 2021년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반복된 부재중 전화를 스토킹으로 처벌하는 하급심 판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스토킹처벌법의 입법 목적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벨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가 표시되게 해 불안감,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는 실제 통화가 이뤄졌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스토킹 행위가 반복돼 불안감, 공포심이 높은 피해자일수록 전화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토킹 행위가 아니라고 한다면 처벌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시켜 부당하다”고 했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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