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과 투자의 경계선상에 있는 희한한 방식의 투자를 받은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이 등장했다. 업체에서는 수백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고 강조하지만 투자업계 일각에서는 대출에 가까워 투자로 보기에 무리라는 주장이다.
전자상거래 분야 스타트업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은 23일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파인트리자산운용에서 500억 원 규모의 ‘벤처 대출’(venture debt) 형태의 신규 투자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 업체는 누적으로 2,23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이 국내에서는 생소한 벤처 대출이다. 에이블리는 어떤 형태의 투자인지 밝히지 않은 채 "투자사와 스타트업 모두에 좋은 전략적 자금 조달 방식"이며 "구글,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스포티파이, 우버 등 미국의 대표적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받은 선진 금융상품"이라고 소개했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대출이지만 투자 방식의 하나"이며 "내용을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방식의 투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VC들은 투자보다 빚으로 본다. 해외 유명 VC 관계자는 "벤처 대출은 용어 그대로 엄밀히 말해서 투자가 아닌 빚"이라며 "대출을 해주고 이자처럼 대출금액의 일정 비율을 스타트업의 주식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 또 다른 VC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2021년부터 벤처 대출이 등장했다"며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투자와 달리 벤처 대출은 투자사가 이자까지 챙기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출을 투자로 표현했을 때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VC들은 "벤처 대출을 일반 투자처럼 강조하면 실제보다 기업 가치가 과장돼 보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VC 관계자는 "투자는 기업의 잠재적 가치와 성장 가능성을 보고 기업 가치를 평가해 진행한다”며 “대출과 투자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 관계자는 “요즘 투자 시장이 얼어붙어 예전처럼 스타트업들이 투자받기 힘든 상황"이라며 "그렇다 보니 벤처 대출도 일반 투자처럼 강조하는데 사실을 명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의류 쇼핑 앱 에이블리 이용 화면. 에이블리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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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사업을 시작한 에이블리는 누구나 의류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며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이용자에게 적합한 의류 등을 추천해 주는 온라인 쇼핑몰이다. 특히 이용자의 구매 이력과 선택한 상품 등의 자료를 분석해 취향에 맞는 의류를 추천하는 개인 맞춤형 추천 서비스를 제공한다. 덕분에 월간 이용자 수 700만 명으로 쿠팡, 11번가에 이어 국내 인기 쇼핑 앱 순위 3위에 오르며 지난해 말 기준 연간 거래액 1조 원을 기록했다.
이 업체는 개인 추천 기술을 바탕으로 '아무드'라는 온라인 의류 판매 앱을 앞세워 일본에도 진출했다. 업체에 따르면 아무드는 일본에서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의류 판매 앱 가운데 유일하게 쇼핑 앱 내려받기 순위 5위 안에 들었다. 강석훈 에이블리 대표는 "사업 차별성과 성장 가치, 수익성을 인정받아 이번 투자를 유치했다"며 "연내 1조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 유니콘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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