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임기와 정책금융기관 임기를 깨끗하게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요정책기관을 선별해서 2.5년, 5년 등 정부 임기와 맞추고, 나머지 기관들의 임기는 존중하는 것이 선진적 행동.”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최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소신 발언이다. 이 회장은 차기 정부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추진에 강력히 반발했다. 그리고 깨끗이 현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그는 “산은은 은행인 동시에 정책금융기관이므로 정부와 정책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회장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순리라고 평소 생각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사임 의사를 전달한 것이지 다른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동걸 회장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문재인정부 시작과 비슷한 시기 산은 회장이 된 그는 연임 포함 약 5년간 산은에 몸을 담았다. 1년 6개월여 잔여 임기가 있지만 그는 사임을 택했다.
사임 의사를 밝힌 이동걸 산은 회장이 최근 소신 발언을 했다. (산업은행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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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회장 어떤 인물?
▷국정 철학·전문성 중요
“최근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의 합병 불승인으로 매각이 무산되고 KDB생명, 쌍용자동차의 매각이 좌절되는 등 차질이 발생해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떠나기로 한 이 회장이 임기 내 부정 평가를 받은 구조조정 사안에 대해 밝힌 입장이다. 이 회장은 임기 중 10여개 굵직굵직한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다만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쌍용자동차, 대우조선해양 매각 무산 등의 숙제도 남겼다. 이 과정에서 산은의 매각 원칙이나 방향,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꽤 나왔다. 이 회장은 “이 3가지 건을 근거로 지난 5년간 구조조정을 한 것이 없다고 비난한 것은 잘못이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일하는 3300명 직원과 그 가족에 대한 모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역으로 그만큼 차기 회장에게 남겨진 숙제가 만만찮음을 시사한다.
산은 부산 이전 추진도 큰 과제다. 차기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부산 이전안을 낙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 국가균형발전 촉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 공감한다. 지방 이전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등 여러 관계자와 협의, 검토를 하고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에서도 산업은행 본점 이전으로 디지털 융복합 허브를 조성하는 방안이 소개되기도 했다.
일련의 상황을 정리해보면 차기 산은 회장은 ‘윤석열정부와 국정 철학이 맞는지, 기업 구조조정 경험이나 전문성이 있는지, 지역균형발전 관점에서 산은이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은지 등에 대한 명확한 입장 유무’ 등이 선임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산은 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 (왼쪽부터) 이석준 서울장학재단 이사장, 강석훈 전 청와대 경제수석, 윤창현 국민의힘 국회의원, 황영기 전 금투협회장. (매경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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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군은 많아
▷산은 부산 이전 추진력 갖춰야
이런 관점에서 차기 정부 산하 금융권 인사 여럿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현역 국회의원인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 이석준 서울장학재단 이사장(전 국무조정실장), 강석훈 전 청와대 경제수석,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 중 ‘국정 철학이 맞아야 한다’는 논리에서는 이석준 이사장이 가장 가깝다는 평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행정고시 26회에 합격, 기재부 2차관과 미래차관부 1차관, 국무조정실장 등을 지낸 관료 출신. 그는 ‘윤 당선인 인재 영입 1호’로 발탁, 지난해 6월 대선 출마 선언식 당시 후보자였던 윤 당선인과 나란히 앉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만 이 이사장은 서울장학재단에 최근 부임한 만큼 다시 산은으로 옮기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강석훈 전 경제수석도 비슷한 경우다. 강 전 수석은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선대본부 정무실장으로 경제 분야 정책 아이디어를 많이 냈던 인물. 19대 국회의원 시절 당시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정책금융공사를 통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산은 관련 이해도도 높다는 전언이다. 다만 강 전 수석은 차기 공정거래위원장에도 거론되는 등 여러 기관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전문성 영역에서는 윤창현 의원과 황영기 전 금투협회장,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등이 거론된다. 윤 의원은 MB 시절 금융연구원장 출신으로 원장 시절 국책금융기관, 산은의 구조조정 원칙 등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 현직 정무위 소속 의원으로 정책과제나 현안에 밝다는 점도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윤 의원은 금융위원장 후보로도 거론되는 만큼 상황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후문이다.
삼성, 우리금융지주 등을 거친 민간 분야 금융 전문가 황영기 전 금투협회장도 산은의 혁신을 이끌 인물 중 한 명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황 전 회장은 가는 곳마다 새로운 시도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켜왔다. 그는 금융을 ‘산업의 2중대’가 아니라 ‘금융 산업’으로 접근하고 키워야 한다는 지론의 소유자다. 따라서 황 전 회장이 산은 회장이 되면 산은 기능이나 정책 방향을 새롭게 재정립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이 퍼지는 중이다.
전문성 면에서는 남주하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남 교수는 박근혜정부 시절 국책은행 통폐합 정책을 수립하는 데 일조했다. 2016년에는 한국수출입은행 경영혁신위원장으로 국책은행 구조조정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학자로서는 국책은행 관련 이해도가 높은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한편에서는 산은의 가장 큰 현안인 부산 이전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인물이 올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본사 이전은 현재 이동걸 회장 외에도 산은 노조 등에서 강력 반발하는 사안이다. 일부 산은 노조원은 더불어민주당 당원 가입을 불사할 정도로 이 사안은 민감한 문제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 사안만큼은 같은 당이지만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해 향후 여여 갈등 소지를 남기기도 했다. 반면 부산, 영남 지역에서는 산은 이전에 대대적인 환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자칫 지역균형발전을 꾀하다가 산은이 정쟁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초대 산은 회장은 이런 갈등 상황 해결에 일가견이 있는 정무 감각이 있는 인사가 임명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를 주목한다. 최근 지역균형발전특위가 산은 부산 이전 주요 논리를 개발하고 이전 시 시너지 효과를 어떻게 낼 수 있는지 다양한 정책 방안을 제시한 바 있어서다.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정책 추진에 관여한 인사로는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위원장)를 비롯해 엄태영·하영제·홍석준 국민의힘 의원, 김재구 한국경영학회 회장(명지대 교수) 등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갈등 해결에 초점을 맞출지, 기업 구조조정과 벤처 발전에 힘쓸 인물을 택할 것인지가 회장 선임의 방향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수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8호 (2022.05.11~2022.05.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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