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불확실성 속 韓 리더십 공백 비상이지만
트럼프에 주한미군, 中 견제 위해 버리기 아까운 카드
韓, GDP 대비 국방비 지출 2.8%, 자주국방 모범국
고물가 공략해 당선된 트럼프, 관세폭탄 부담스러울 것
조선업 부활 추진하는 美에 韓 최적의 파트너
韓 압박했을 때 준비 안돼 있으면 그 때가 최악
정쟁 자제하고 여야정이 대응 방안 마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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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무대에서 한 장의 사진만큼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것도 없다. 2006년 찍힌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사진이 그렇다. 부시는 고이즈미가 엘비스 프레슬리 광팬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를 멤피스의 프레슬리 생가로 초대했고 고이즈미는 즉석에서 기타를 치는 시늉을 하며 엘비스의 노래를 불렀다. 워싱턴에 있는 한 싱크탱크의 한국 전문가는 “미일 밀월을 전 세계에 과시한 사진”이라고 평가했다.
18년 전 이야기를 꺼낸 것은 16일(현지 시간) 나온 또 다른 장면 하나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과 어깨동무를 했다. 이후 트럼프 측은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 측에 1월 중순 미국에서 만나자는 뜻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미국과의 관계 설정 첫 단추는 우리가 더 잘 끼웠다. 이례적으로 일본보다 먼저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를 했고 특히 트럼프는 한국의 조선업과 협력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령으로 상황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본지와 만난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 관계자들도 보수·진보·중도 성향 가릴 것 없이 한국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맞닥뜨렸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정상적인 상황이어도 트럼프가 한국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 불확실성이 큰데 이제는 리더십 공백까지 맞았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정상끼리의 ‘톱다운’ 식 외교를 선호해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인 한국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긍정적인 부분도 적지 않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감축 내지는 철수까지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봉쇄라는 목표를 세운 트럼프에게 중국 지척에 있는 2만 8500명의 주한미군은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카드다. 한미 동맹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소중한 가치다. 북한·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와 맞닿아 있으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한국을 잃는다면 미국에도 치명상이 될 것이다.
주한미군 분담금은 어떤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는 나라 중 하나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2.8%로 미국의 주요 동맹보다 월등히 많았다. 영국이 2.3%, 프랑스가 2.1%, 독일이 1.5%, 일본은 1.2%였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주국방을 이어가는 모범국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
관세 폭탄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관세는 미국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예상한 바다. 바이든 시대 고물가를 물고 늘어져 당선된 트럼프도 고물가가 자신에 치명타가 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실제 트럼프는 8일 NBC 인터뷰에서 “관세로 미국 가정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느냐”고 묻자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다”며 특유의 자신감 넘치던 모습에서 다소 물러나는 태도를 보였다.
우리는 조선업도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미국은 해군력에서 중국에 밀릴 것으로 보이자 조선업 부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전 세계 선박의 26%를 건조해 중국(51%)에 이어 세계 2위였다. 미국의 조선업 부활 정책에 한국만 한 파트너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트럼프 특성상 그가 한국에 실제 어떤 압박을 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대응 카드가 많으니 지나치게 숙이고 들어가 안 내어줘도 될 것까지 줄 필요는 없다. 트럼프가 한국에 대한 압박성 메시지를 전송한 순간 준비가 안 돼 있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그 때가 정말 최악일 것이다. 지금만큼은 정쟁을 자제하고 여야정이 합심해 트럼프 시대 대응 방안을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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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태규 특파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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