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영장 기각…현장 경찰과 검사 간극
지난 15일 조아무개(56)씨가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를 받던 여성에게 흉기를 휘두른 서울 구로구 한 술집 앞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이우연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경찰 신변보호(범죄피해자 안전조치)를 받던 여성이 스토킹 가해자에 의해 살해당한 ‘구로 스토킹 살해 사건’ 원인 중 하나로 ‘스토킹 위험도’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서로 다른 판단이 지목된다. 직접 조사한 경찰은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가해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서류로 검토한 검찰의 위험도 판단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경찰, 검찰, 법원의 서로 다른 판단이 스토킹 범죄 대응 실패로 이어지는 만큼 스토킹 위험도를 공동으로 판단하는 등 제도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① 경찰은 왜 가해자 접근 차단 노력 안 했나
피해자 여성 이아무개(46)씨는 당초 가해자 조아무개(56)씨를 폭행과 협박 혐의로 양천경찰서에 고소하고,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대상으로 등록돼 스마트워치를 받았다. 같은날 오후 조씨는 이씨가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와 행패를 부렸고 구로경찰서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조사를 벌인 경찰은 스토킹 혐의를 추가로 포착하고 다음 날 12일 새벽 조씨를 유치장에 입감시켰고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검찰은 이를 기각했고 조씨는 풀려났다.
당시 구로경찰서는 조씨의 스토킹 위험도를 가장 높은 ‘심각’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한달 동안 유치장에 유치할 수 있는 ‘잠정조치 4호’를 검찰에 신청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경찰은 ‘심각’으로 판단할 경우 ‘잠정조치 4호’를 신청하도록 하는 스토킹 범죄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선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16일 구로경찰서 관계자는 미신청 이유에 대해 “잠정조치는 스토킹 혐의가 성립돼야 집행할 수 있는데, 검사가 스토킹 혐의에 대해 일부 보완 수사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다만 구속영장과 잠정조치는 그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신청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여성범죄부서의 한 간부급 경찰은 “구속영장은 증거인멸이나 도주를 막기 위한 것이고, 잠정조치는 (스토킹) 재발을 우려해 신청하는 것으로 목적이 다르다”고 말했다.
② 검찰의 스토킹 가해자 구속영장 반려는 적절했나
검찰은 스토킹 혐의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해 보강수사를 요구하는 차원에서 영장을 반려했다고 밝힌다. 구속·유치 등 가해자 접근을 차단하는 조처는 경찰, 검찰, 법원 판단을 거쳐야 가능하다. 경찰이 잠정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검사가 스토킹 혐의에 대해 일부 보완 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히는 것도 이를 염두한 것이다. 현장 경찰과 경찰 수사 적법성을 검토하는 검찰 사이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언제든 비슷한 범죄가 재연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지역 경찰서의 한 여성·청소년과장은 “가해자를 직접 대면하는 수사관 입장에서는 위험성이 더 다가오지만, 기록으로만 판단하는 검사나 판사 입장에서는 구속하기에는 부족해 보이는 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 전문가들 “검·경, 스토킹 위험도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현장 경찰과 구속영장 및 잠정조치 청구권을 가진 검찰이 스토킹 위험도를 공동 판단하는 식의 제도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스토킹 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경찰의 간극을 좁히고 소통과 협조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지난해 말 경찰청 단위 등에서 스토킹 사건 관련 대응방안이 마련된 만큼 이를 현장에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민경 경찰대 교수는 “경찰이 해당 사건을 ‘심각’으로 분류하기도 했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것은 사안이 심각하다는 것인데 경찰 내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더 적극적인 보호 조치가 있을 수는 없었나 아쉬움이 남는다”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잠정조치 4호는 반드시 바로 청구해야 한다’는 식의 위험성 평가를 상황별로 더 자세하게 표준화하고 일선 경찰들에게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가 긴급한 스토킹 사건의 경우 경찰 직권으로 피·가해자를 적극 분리할 수 있는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스토킹 가해자의 경우 신고 시 피해자에 대한 극단적인 복수심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수사 도중 이런 징조가 보일 경우 즉시 가해자를 물리적 이격시키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며 “100m 이내 접근금지 등의 조치를 넘어서 경찰이 직권으로 긴급하게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을 인식한 대검찰청은 이날 “스토킹·성폭력·보복범죄 등 강력사건에서 사건 발생 초기부터 경찰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영장 검토 시 재범 및 위해 우려 등이 있을 경우 가해자 접근 차단을 비롯한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가 이뤄지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대검찰청은 “피해자 신변보호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하겠다”고 했다.
▶바로가기: ‘신변보호’ 비웃는 스토킹 살인…“위치추적으로 가해자 사전에 막아야”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31226.html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