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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인질 구출이 전쟁 종식”…‘10·7 트라우마’ 이스라엘 사람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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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에 지난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공격에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피켓들이 지난 21일 빼곡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 당시 노바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으며, 하마스 공격 뒤 주검만 수백구가 발견된 곳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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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10월7일’은 이제 고유명사이자 보통명사다. ‘10월7일’은 1년여 전인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지칭하는 사건의 고유명사이며, 또 그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 사회가 겪는 트라우마를 의미하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10월7일, 나와 남편은 17시간 동안 대피실에서 문고리를 잡고는 하마스 대원의 침입을 막는 사투를 벌였어요. 그동안 우리 키부츠에 같이 살던 언니와 형부 등은 납치됐고, 이웃들은 살해됐어요. 언니는 한달 뒤 인질 석방 교섭을 통해 돌아왔으나 아직까지 말을 하지 않고, 형부는 여전히 인질로 남아 있어요.”



전쟁이 지속 중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5㎞ 떨어진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의 주민 아옐레트 하킴(56)은 지난 21일 그날의 참상이 폐허로 남아 있는 집들 옆에서 담담히 얘기했다. 그날 1300명의 주민이 살던 이 키부츠에서 102명이 죽었고, 40명이 납치됐다.



키부츠는 이스라엘 건국을 주도한 동유럽 출신 유대인 사회주의 세력의 전통이 남아 있다. 특히 가자지구 인근의 키부츠는 팔레스타인 주민과의 관계가 평화를 유지하는 핵심이었다. 이 때문에 이곳 키부츠 주민들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과의 화해와 공존을 모색했다. 가자 주민들이 이 키부츠로 와서 일하고, 키부츠 주민들은 가자지구를 위한 정기적인 모금과 구호 등 지원을 했다.



하킴은 그날 문고리를 잡고 사투하던 17시간을 겪으면서, 이 키부츠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꿈꾸었던 그런 모든 희망이 증발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하킴은 가자지구 주민들과의 관계가 복원될 수 있을지 이제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쪽에서 테러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이런 재앙은 계속될 것이라고 절망했다. 또 군기지가 인근에 있는데도 17시간이 지나서 군이 늑장 출동한 사태는 물론이고, 지난 15년간 집권하면서 이런 재앙을 막지 못한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는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하킴은 “평화와 공존 외에는 답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 했다.



베에리 키부츠 인근 지역은 이제 그날의 참상을 기억하는 일종의 ‘순례지’가 됐다. 많은 젊은이들이 콘서트를 즐기다 364명이 살해되고 40명이 납치된 노바 페스티벌이 열렸던 장소에는 희생자들의 사진과 이력을 담은 푯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날 인근 지역에서 불탄 차량들을 모아서 겹겹이 쌓아놓은 곳도 있다.



한겨레

24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칸유니스에서 피난민 아이들이 텐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지난해 10월7일 가자전쟁 발발 뒤 가자지구 주민 190만명이 피난민이 됐으며, 가자지구에서 4만4천명 이상이 숨졌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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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를 타고 이스라엘 전역, 국외에서도 방문객들이 줄을 서서 찾아온다. 자원봉사자들이 방문객들에게 그날의 참상을 상기된 표정으로 설명한다. 자원봉사자나 방문객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특수전 교관이었다가 최근 다시 군무원으로 일하는 오페르 슈메를링은 기자들을 가자지구의 슈자이야 마을 앞 500m까지 데리고 가서는 “이제는 이 문제를 끝내야 한다”며 “전쟁을 끝까지 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월7일’ 앞에서 이스라엘 사회는 분열과 극복 사이를 오가고 있다. 인질 문제는 대표적이다. 이스라엘 전역의 거리에는 ‘인질을 지금 집으로’라는 구호와 인질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네타냐후 정부의 관리들은 인질 문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민사회, 특히 인질 문제에 발 벗고 나선 이들은 다른 입장이다. 인질 한명의 생명이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고 호소한다.



‘10월7일’ 뒤 이스라엘 시민사회에서는 ‘인질 및 실종 가족 포럼’이라는 단체가 조직됐다. 이 단체에서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전 주프랑스 대사인 다니엘 셰크는 “포럼은 정부를 위해서, 혹은 반대해서 일하지 않는다”면서도 인질 석방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질 가족 중에는 인질이 희생되어도 하마스와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10여 가족이 있지만, 그들에게도 차별 없이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네타냐후 정부가 여러 정치적 이유로 전쟁을 종식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고 비판하면서 “그 어떤 정치적 계산도 인질 한명의 목숨보다도 중요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전쟁을 끝내는 것이 인질을 구하는 것이고, 인질을 구하는 것이 전쟁을 끝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10월7일’ 이후 이스라엘은 전쟁 중이다. 총과 포성,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은 가자와 레바논에서만 진행 중이다. 텔아비브의 밤거리에는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는 속에서 이스라엘 사회가 겪는 전쟁은 ‘10월7일’이 가져온 트라우마와의 전쟁이다.



텔아비브/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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