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뷰] 판
뮤지컬 ‘판’은 19세기 조선 제일의 이야기꾼을 통해 지금 이곳의 현실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다. 코로나와 LH 사태 등이 등장한다. /정동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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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정동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판’은 젊고 혈기 방장한 마당놀이다. 놀이패는 “손이 있으면 박수 한번 주시게~”로 관객을 무장해제시키곤 주막을 겸한 매설방(이야기방)에서 판을 펼친다. 이야기를 파는 것이다. 화끈하게 야릇하게 은밀하게. 달수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는 낭독의 기술을 익힌다.
마당놀이가 지닌 매력 중 으뜸은 현실 풍자다. 3년 전 국정 농단과 블랙리스트를 다뤘던 ‘판’은 이번에도 19세기 조선을 빙자해 지금 여기를 비꼰다. 주막에 들어갈 때 명부를 작성하거나 인증을 받아야 하는 방역 수칙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부동산 투기까지, 비유는 찰떡이고 풍자는 신랄하다. 그 한 토막은 이렇다.
백성들은 역병으로 시름에 젖어 있는데 사또란 놈이 못 쓰는 땅을 웃돈까지 얹어 줍줍하고 있다지 않은가! (예끼, 그런 놈이 어딨어? 하자 합창이 흘러나온다) “두껍아 두껍아 헌 땅 줄게 새 집 다오~” (사또, 새 집 얻었으면 됐지 또 뭐가 그리 바빠?) 버드나무 좀 심어야겠네. 빼곡하게 꼼꼼하게. (개발 정보 미리 알고 알박기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자) 살다 보니 벼락처럼 신도시 호재를 만난 걸 어떡합니까!
정동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판'. LH 사태를 풍자하는 대목이다. /정동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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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짜증을 몰아내는 청량감이 있었다. 사또가 “어차피 두어 달만 지나면 사람들은 다 까먹는다니까” 하며 뱉는 재채기 소리마저 “엘에이취(LH)!”였다. 객석엔 웃음이 흥건했다. 제작진은 “(LH 사태 풍자는) 공공의 이익이 존중받고 공정한 사회가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릇은 비싼 게 좋지만 책은 손때 묻은 게 제일이다. 이 뮤지컬은 마약이나 총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암거래하는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내시인 줄 모르고 혼인한 여인, 줄타는 여자 광대 스토리도 꼭두각시놀음, 판소리, 가면극 등으로 생동감 있게 풀어냈다. 목숨 걸고 이야기를 펼치는 마지막 장면에선 가슴이 서늘해진다. 공연은 9월 5일까지.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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