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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거인의 집념'이 만든 초일류 이건희 컬렉션…문화 국격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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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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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1890년대 작 `책 읽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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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애에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쾌거! 정말 그렇다. 즉 이 땅에서는 일찍이 없었던 문화적 선행이다. 바로 '이건희 컬렉션'의 국가 기증을 말한다. 삼성의 용인 수장고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같은 경기도 안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 용인에서 과천으로 가는 길. 이 길에서 우리는 세기의 기증을 맞이했다. 5t 무진동 트럭 18대의 행렬. 정말 장쾌한 풍경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국립현대미술관은 1488점의 귀중한 미술품을 추가했고, 숙원이었던 소장품 1만점 시대에 진입하게 됐다. 이는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보다 더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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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 1875년 작 `무제(센강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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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의 특징은 무엇보다 '다양성'을 들게 한다. 그야말로 동서고금의 집성이다. 한국 고대미술부터 서양 동시대의 현대미술까지 망라돼 있다. 광폭의 시각, 이건희 컬렉션에서 통섭의 시대정신을 본다. 수집 작품의 특징은 시대, 장르, 재료, 주제 등을 망라하면서 다양성으로 컬렉션의 가치를 높여준다. 수준 높은 균형 감각의 소장철학을 읽게 한다. 그래서 민족 문화유산의 집성, 젊은 작가를 포함해 예술가를 대우하는 자세, 해외 미술계와 교류하면서 국격을 올리는 일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하게 한다.

이건희 컬렉션의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열정'이라는 열쇠 말을 들고 싶다. 열정의 산물. 미술에 열정이 없다면 이룩할 수 없는 질과 양의 컬렉션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오랜 시간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다. 미술 작품을 보는 혜안이 없다면 이렇듯 다양한 분야의 수준을 이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작품을 입수하기 위해 해외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는 자세. 바로 미술품에 공을 들이는 자세, 그런 결과가 소장품으로 귀결됐다. 요약하면 열정, 전문성, 시간, 재력, 이러한 부분들이 모여 이건희 컬렉션으로 이어졌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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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기증품의 장르별 분포는 이렇다. 회화(서양화) 412점, 한국화 296점, 판화 371점, 드로잉 161점, 공예 136점, 조각 104점 등 전체 1488점의 다양성을 확인시켜 준다. 기증 작품 가운데 1950년대 이전 제작은 320점가량으로 전체 기증품의 약 22%를, 근대 작가라 일컬을 수 있는 1930년 이전 출생 작가의 작품은 약 860점이어서 전체 기증품의 약 58%를 차지한다. 그러니까 한국 작가는 238명의 작품 1369점이고, 해외 작가는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폴 고갱,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등 8명의 119점으로 분류된다.

작가 개인별로 보면 유영국의 경우가 최다를 이룬다. 유화 20점과 판화 167점으로 187점이다. 이어 이중섭으로 회화 19점 이외에 엽서화 43점, 은지화 27점으로 총 104점을 이룬다. 이중섭의 경우는 별도의 개인전을 개최할 수 있는 숫자여서 내년 봄에 공개할 예정이다. 유강열 68점, 장욱진 60점, 이응노 56점, 박수근 33점, 변관식 25점, 권진규 24점의 순서다.

이건희 컬렉션의 국가 기증 문제가 대두됐을 때, 나는 100점 정도만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이 국가 미술관이지 김환기의 대표적 점 시리즈 한 점 소장하고 있지 않기에 빠진 부분의 보완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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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1937년 작 `공기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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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의 연간 작품 구입비는 50억원도 되지 않는다. 구입비 2~3년 치를 합쳐야 김환기의 대표작급 점 시리즈 한 점을 겨우 살 수 있는 처지였다. 이중섭의 황소 계열이나 박수근 100호 크기의 대작 등은 미술관 예산과 거리가 먼 글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행복'인가. 다양한 형식의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증품의 내역은 상향됐다. 결과적으로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농악',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산울림' 등이 기증품에 포함됐다. 주위 친지들이 나를 보고 '행복 관장'이라고 부르는데, 이번 이건희 컬렉션을 받으면서 실감했다. 행복 관장! 우리 미술관에 행복한 일만 계속 이어지기를.

이중섭의 '황소'를 보자. 붉은 바탕에 역시 붉은색의 황소 머리를 근접해 표현한 작품이다. 황소는 마치 절규하듯 뭔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눈동자에 힘이 들어 있고, 역동적이면서도 절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론 식민지 시절의 소는 우리 민족의 상징이었다. 한우는 일본에서 보기 어려운 가축, 그래서 한우를 소재로 선택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민족성을 떠오르게 한다. '황소'는 6·25 전쟁 시기에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고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제작한 것이다. 더불어 이중섭의 '흰소'(1950년대)는 백의민족을 염두에 둔 하얀색의 소다. 고개를 숙이고 발을 모아 뭔가 전진과 저항하려는 자세, 그것도 하얀색의 황소, 울림이 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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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의 경우, 회화 작품 18점과 드로잉 15점. 이는 대단한 숫자다. 세속적으로 미술시장에 박수근 유화 10점이 한꺼번에 나타났다면 그야말로 작은 지진과 다름 아닐 것이다. 그만큼 고귀하다는 의미다. 100호쯤 되는 대작 '농악'(1960년대)은 소품 중심의 박수근 작품과 비교해 예외에 속한다. 이 그림은 농악놀이를 하는 현장의 역동성을 박수근 특유의 기법으로 묘사했다. 화강암 같은 질감과 회색조의 색채, 그리고 배경 생략과 선묘(線描) 중심의 대상 표현 등이 주목을 끈다. 화면은 상하로 양분해 꽹과리를 치면서 원무를 이루고 있는 놀이마당의 부분을 확대해 표현한 것이다.

'절구질하는 여인'(1954) 역시 대작으로 아이를 업고 절구질하는 여인의 측면을 화면 가득 그린 국전 출품작이다. 박수근은 좋아하는 소재를 반복해 즐겨 그린 특징이 있다. 절구질하는 여인도 그렇고 빨래터의 경우도 그렇다.

김환기 뉴욕 시절의 점 시리즈. 1973년 작가 만년 절정기의 작품 '산울림'은 감동 어린 작품이다. 화면 구성은 크게 디귿(ㄷ) 형태의 구획을 상단에 두고 무수한 점으로 일정한 리듬을 두었다. 산 능선 가득 울리는 메아리 같은 점,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같은 점, 화가는 종신수(終身囚)처럼 뉴욕 시절에 점 연작을 제작했다. 이번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으로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를 들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통칭 2000호로 불리듯이 김환기의 작품 가운데 제일 큰 작품이라는 점, 그것도 구상 시기의 절정에서 화가 자신의 대표적 도상을 망라했다는 점에서 새삼 주목하게 한다. 원래 이 작품은 1980년대 중앙일보사 신사옥 로비에 걸렸던 이력이 있다. 당시 나는 그 건물에서 근무하면서 이 작품과 인연을 맺었다. 이 작품은 뒤에 호암미술관의 '근대유화 명작전'(1990)에 출품됐고, 또 '호암미술관 소장 한국근대미술 명품도록'(1992)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삼성에서 귀하게 아끼던 작품이었다. 만약 이 작품을 오늘 경매에 올린다면 시작 가격은 최소 300억원 내지 400억원부터여야 한다고 본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는 무가(無價), 즉 가격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기야 어디 김환기 작품만 무가이겠는가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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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1020년 작 `사내아이`


이번 기증품 가운데 삼성이 아끼던 명품 다수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앞의 '호암미술관 소장 한국근대미술 명품도록'에 수록된 작품들, 예컨대 나혜석의 '화령전 작약', 김종태의 '사내아이', 백남순의 '낙원', 김중현의 '농악', 박수근의 '농악', 박상옥의 '유동(遊童)', 도상봉의 '성균관 풍경', 윤효중의 '물동이 인 여인', 권진규의 작품 등 다수다. 이렇듯 삼성가에서 아끼던 명품을 대거 내놓았다는 사실, 기증품의 질적 제고를 의미한다. 참고로 박물관법에 의하면 미술관의 소장품 변경 등록이 가능하게 돼 있다. 그러니까 소장품의 내용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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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더 보탤 것은 이번 이건희 컬렉션의 국가 미술관 기증과 관련해 내건 조건이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점이다. 순수한 의미의 기증이라는 뜻이다. 만약 해외 미술시장 등에 작품을 판매하면 이익을 취할 수 있겠지만 유가족은 판매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순수한 의미의 사회적 환원, 정말 고귀한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나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가족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자 한다. 특히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을 기억하고 싶다.

나는 1984년 호암갤러리 개관 당시 실무책임자로 일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아직 학예실이 없어 미술계에 큐레이터라는 직함조차 없을 때였다. 중앙일보사는 서소문에 신사옥을 신축하면서 아트홀과 더불어 전시 공간을 신설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창업주)의 특명에 따른 예술 애호의 구체적 산물이었다. 당시 큐레이터로 발탁됐던 나는 전시기획 업무를 진행했다. 갤러리 담당 임원은 중앙일보 상무이사 직함의 홍라희 관장이었다. 호암갤러리는 뒤에 삼성문화재단의 삼성미술관 리움으로 발전했고, 홍 관장의 빛나는 역할로 이어졌다.

이번 이건희 컬렉션의 국가 기증이라는 엄청난 쾌거를 맞이해 미술관의 품격은 수직 상승했고, 기증품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국격을 높이는 미술품의 기증, 이제 우리도 국제사회에서 얼굴을 들 수 있을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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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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