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농업인이 농지 소유를 허용한 예외 규정에 따라 농지를 소유한 경우, 해당 농지는 농업에 이용돼야 한다는 조항 신설을 주요 골자로 한 ‘농지법 일부 개정 법률개정안’이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농지를 주택이나 창고 등 다른 용도로 전용하는 것 자체가 위법임을 명문화한 것이다. 다만 처벌이나 매각을 강제하는 내용은 빠져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외지인들의 농지보유 현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자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도 담겼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논의와 제도 개선의 방향이 다소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 농지법이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는데, 옛 원칙을 근거로 규제만 더 강화하는 것은 ‘자충수’라는 것이다.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경기 시흥 과림동 667번지에 향나무 묘목이 식재돼있는 모습. /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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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지 투기 대상되면 안돼…농지 전용 아예 막자"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와 ‘농지 보호·활용’에 대해서는 각계 전문가 사이에서 시각 차가 있다. 헌법에 명시된 ‘농지는 농업인만 취득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농업인구가 감소하고 귀농 장려정책 등이 시작되면서 ‘농지 규모가 1000㎡이하면 농업경영계획서 없이 도시민이 농사 지을 수 있는 등 예외가 허용돼왔다. 이런 법망 사이로 농지는 일부 비농업인의 투자 대상으로 활용돼왔다.
실제 LH 직원을 비롯해 비농업인의 투기 사례로 의심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 농지는 실제 농사를 짓지 않고 펜스를 쳐두고 폐기물 처리장으로 쓰거나 창고용도로 쓰이고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과 달리 토지 전용 및 무단 사용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원칙대로 정말 농사를 지을 사람만 농지를 취득할 수 있도록 농지법을 강화해야 한다", "농지를 주택지·공장부지 등으로 돌려쓰는 농지 전용(農地轉用)을 방만하게 하는 농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LH 직원 투기 의혹을 제기한 참여연대 소속 이강훈 변호사는 "상식적으로 그 지역에서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외지인의 농지 취득이 허용되고 면적이 작다는 이유로 주말농장으로 여겨져 말도 안되는 행태들이 법에 의해 허용되면서 농촌이 망가지고 있다"고 했다.
비농업인의 농지 투기로 농지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농업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강훈 변호사는 "투기 세력에 의해 농지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정작 실제 농업 경영을 하는 농민은 농사를 지어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라면서 "농지 전용이 아주 자유롭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무진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20%대에 그친다. 국민의 먹을거리인 농산품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이고 수입 농산물 등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면서 "농사 짓는 땅을 지키는 것은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투기 근절 대안으로 ‘농지농용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농지 전문가인 박석두 GS&J 인스티튜트 연구위원은 "경자유전의 원칙은 사문화한 게 아니라 최후의 보루"라면서 "삭제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쉽게 ‘경자(耕者)’로 위장할 수 있는 문제가 있으니, 누가 소유하든지 간에 농지에 대해서는 농업 용도 외에 다른 용도로 전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는 투기세력의 농지 매입과 농지 전용에 의한 이득을 거두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 "경자유전 원칙 현실에 맞지 않는 옷… 농지 취득 규제 강화는 자충수"
반면 농지 취득 규제 강화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헌법 상의 경자유전 원칙 자체가 사회·경제 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시대적 잣대라는 이유에서다.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가 아닌 오늘날 농업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농지를 농민만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합당한 방향이 아니라는 얘기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현재 농촌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농촌 인구가 감소하면서 농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서 "농촌 경제가 피폐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자경농민 취득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시대와는 동떨어진 방향"이라고 했다.
2019년 12월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 발행한 '농지제도 및 농업인 정의 규정 정비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농업경영체 110만4000곳이 소유하거나 임차한 농지면적은 135만4000ha로 전체 농지면적 167만9000ha의 80.6%다. 나머지 32만5000ha, 전체 농지 면적의 19.4%는 비농업 농지로 조사됐다.
농지 취득 및 거래를 농업활동을 하는 농민으로 제한하는 것이 또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 위원은 "농지 거래를 실제 농사를 짓는 농민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할 경우 육체적으로 농업 활동이 어려운 고령 농민의 안정적 노후 생활을 위한 퇴로가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계 전문가는 "우리나라 농지 거래를 보면 매수자의 절반 이상은 외지인인데 과연 이것을 모조리 문제로 삼는 게 맞는가"라면서 "법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퇴임 후 거주 목적으로 매입한 농지에 대한 형질 변경 절차도 농지법 위반이 되는데 이런 지적에 문 대통령도 ‘좀스럽다’고 대응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농지법을 검토하려면 ‘과연 경자유전 원칙을 존속해야하는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원칙을 계속 고수하기보다는 변화한 현실을 인정하고 법과 제도에 반영해야 한다"면서 "농지 취득에 대한 규제를 새롭게 만들면 훗날 농지 문제는 더 꼬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도 ‘투기 근절’이 쉽지 않다는 점은 우려하고 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시대적으로 농지 취득에 대한 원칙을 바꾸고 농지도 시장에서 거래가 자유롭게 이뤄지도록 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보지만, 투기가 더 기승을 부릴 위험도 있어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 LH 직원들의 투기 문제의 핵심은 농지법이 아니다. 이들이 공적 정보를 사전에 유출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했는지 여부가 핵심이고, 이런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차단하고 처벌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계 전문가는 "LH 직원들의 투기 논란이 확대되면서 우리 사회의 논의가 다각도로 확장되는 것은 좋으나, 이상하게도 부동산 소유와 거래가 죄악시되고 마치 규제 강화와 정부 개입 강화 등 다소 반(反)시장적인 대안이 해답인 것처럼 흘러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홍상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농지 문제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농지법만으로는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매우 중요한 논의로, 근본적인 농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지윤 기자(jjy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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