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유업은 2010년 ‘바리스타 스모키’ 제품 일부를 자발적으로 회수했다. 포장 용기 살균이 부족했다는 점이 드러났는데 이렇게 되면 유통 과정 중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매일유업의 조치는 식품업계에서 보기 드문 행보였다.
그때만 해도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까지 쉬쉬하는 행태가 흔했다. 그랬던 때에 선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자발적 리콜을 한다는 것은 회사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소비자 신뢰를 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매일유업에 대한 신뢰도는 자발적 리콜을 하고 오히려 높아졌다.
2018년에도 매일유업은 컵커피 ‘바리스타룰스’에서 식품 살균 소독제 과산화수소가 검출되면서 리콜 조치를 했다. 컵커피 용기는 과산화수소를 분사해 살균한 뒤 뜨거운 바람으로 살균제 증발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당시는 공장 내 건조설비 문제로 살균 성분이 제대로 제거되지 못한 점이 문제로 꼽혔다. 당시 매일유업은 “드라이 설비의 일시적인 오류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면서 “전 생산라인의 제반 공정을 재점검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8년이 지나 이번엔 매일유업 광주공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매일유업 멸균유 오리지널에 세척수(수산화나트륨)가 혼입돼 유통된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틀 간의 조사 결과 세척 과정 중 작업자의 실수로 밸브가 잠깐 열리면서 세척수가 혼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매일유업은 지난 12일에 처음 이 문제가 불거지고 식약처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모든 조치를 취했다. 자발적 리콜을 했고 원인도 정확히 짚었다. 13일 공지에서 매일유업은 “설비 세척 중 작업 실수로 극소량의 제품에 세척수가 혼입된 것이 확인됐다”고 했다.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매일유업은 16일 김선희 부회장 이름으로 낸 사과문에서 “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작업 오류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즉시 개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있다. 매일유업은 저온살균으로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온도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사고 시간과 문제의 제품을 특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제조 과정 중 제품의 온도 변화가 기록되면 제품이 출고되기 전에 사전 알람이 울려서 다시 한번 검수하게 할 순 없었을까. 열리면 안 되는 밸브가 열리면 공정이 멈추거나 경보음이 울리는 등의 장치를 미리 두는 것은 불가능했을까.
매일유업이 내놓은 대안 중 소프트웨어 즉시 개선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답도 식약처를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 식약처에 따르면 매일유업이 밝힌 소프트웨어 시스템 개선은 작업자의 개입으로 밸브가 열릴 땐 비밀번호를 넣게 하는 등의 절차 변경이다. 중간 단계를 추가할수록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이번 일과 같은 큰 문제로 이어지지 않는다.
매일유업뿐 아니라 다른 식품회사들도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공정 재점검에 나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다는 추상적인 입장을 밝힌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아야 다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개선 방안을 들은 소비자가 고개를 끄덕인다면 “안전한 식품을 만드는 기업이 되겠다”는 뻔한 수사(修辭)가 붙을 이유가 없다. 개선 방안에 대해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문제가 생기면 가급적 숨기는 것이 국내 식품업계의 관행이던 때가 있었다. 그런 미개한 시절에 매일유업의 행보는 좀 달랐다. 잘못은 인정하고 바로 리콜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식품회사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국내 손꼽히는 식품회사 대부분이 식품 위생과 안전, 신뢰성 확보를 위해 뛰고 있다. 또 한 번 차원이 다른 회사로 발돋움하려면 빠른 사과와 리콜 조치를 넘어서 개선점에 대한 홍보와 설득이 뒤따라야 한다. 앞으로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점을 개선했는지를 더 정확히 알려야 한다.
연지연 기자(actres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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