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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유재명·유아인씨 출연 좀…” 명문대 원서 넣는 심정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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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데뷔작으로 코로나 뚫고 흥행 1위

조선일보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영화 '소리도 없이'에서 범죄 조직의 하청으로 사건 현장을 치우는 '청소부'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과 유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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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 못하는데 명문대에 덜컥 원서 내는 심정이었다고 할까요.”

최근 개봉한 영화 ‘소리도 없이’의 홍의정(38) 감독이 드라마 ‘비밀의 숲’의 배우 유재명과 영화 ‘베테랑’과 ‘사도’의 유아인에게 시나리오를 보낸 건 지난해 초였다. 당시 홍 감독은 입봉을 하지 못한 신인이었고 두 배우와는 일면식도 없었다. 하지만 두 배우 모두 1주일 만에 연락이 왔고 흔쾌히 출연을 승락했다. 장편 데뷔작부터 두 인기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행운을 거머쥔 셈이다. 홍 감독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두 배우와 처음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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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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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개봉한 ‘소리도 없이’는 그야말로 ‘소리 소문 없이’ 흥행 1위에 오르면서 관객 26만명을 동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비수기까지 겹친 극장가 상황 속에서 의미 있는 선전이다. 영화에서 두 배우가 맡은 역할은 범죄 조직의 하청으로 사건 현장의 시체를 처리하는 ‘청소부’. 이들이 어느 날 범죄 조직에 유괴된 열한 살 여자아이를 억지로 떠맡게 되면서 예기치 못했던 사건에 휘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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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 기자 영화 '소리도 없이'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홍의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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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홍 감독은 두 배우에게 독특한 설정을 주문했다. 유아인이 맡은 태인 역은 대사가 한마디도 없다. 구체적인 사연은 드러내지 않은 채 행동과 표정으로만 연기한다. 홍 감독은 “공포스럽게 보이지만 실은 온순하고 겁도 많다는 점에서 고릴라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촬영 전에도 고릴라의 행동을 담은 영상을 틈틈이 보여줬다”고 했다. 홍 감독은 처음에는 태인을 마른 소년으로 설정했지만 몸으로 연기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거꾸로 덩치를 키워달라고 주문했다. 이 때문에 체중 감량을 했던 유아인은 다시 치킨과 아이스크림 등을 ‘폭풍 흡입’하고 15kg을 찌워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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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없이’의 홍의정 감독. 그는 “현실에 도사린 갈등과 문제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보여주는 SF 장르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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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명이 맡은 창복 역할은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홍 감독은 “결핍으로 가득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가운데 서서히 악에 빠져드는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생각했던 작품 제목도 ‘소리도 없이 우리는 괴물이 된다’였다.

홍 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2년간 광고 제작사에서 조감독 등으로 광고와 뮤직비디오 작업에 참여했다. 그 뒤 영국 런던 필름 스쿨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단편 SF 영화 ‘서식지’를 발표하면서 한국 영화계의 ‘기대주’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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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영화 '소리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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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장편 데뷔작인 이번 영화는 전형적인 유괴극이나 범죄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틀에 박힌 장르 영화의 공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이번 작품에 영감을 준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별주부전’을 꼽았다. “토끼가 거짓말로 잔꾀를 부려서 달아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용왕 앞에 납치된 뒤 생존을 위해서 발버둥치는 것이잖아요. 선악(善惡)을 이분법적으로 단정하기 힘든 상황이야말로 오히려 우리의 현실과 닮지 않았을까요.”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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