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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함영준의 마음PT] 김호중 사건 보면서 느끼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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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김호중의 ‘음주 뺑소니’ 사건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된다.

우선 이유야 어쨌든 한 촉망받는 대형 젊은 가수의 추락이다. 어렸을 적 힘들고 험한 시절을 극복한 인생 스토리, 우리나라 팬덤 문화를 선도할 정도로 뛰어난 스타성, 이태리 성악계에서도 주목하는 가창력을 지닌 아티스트가 일순간에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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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롯 가수 김호중은 잘못된 행동은 물론 이후 잘못된 대처로 하루 아침에 ‘국민 가수’ 반열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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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음주운전에서 비롯됐으나 이후 충돌사고, 뺑소니, 사건 조작, 계속된 허위진술과 증거 인멸 시도 등은 어떻게 스스로를 올가미로 완벽하게(?) 옥죄는 길을 선택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인간은 궁지에 몰렸을 때 본능적으로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거짓말을 한다. 유기체로서 자기보호본능이다. 과거 음주운전에 관대하던 시절, 경찰서 교통조사반에 가면 음주운전이나 뺑소니 사고는 비일비재했다. 뺑소니로 입건된 한 유명한 성직자는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숙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게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이후 이성을 찾고 자신의 양심이나 주변의 조언을 들으면서 본능의 브레이크는 걸리고 현명한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런데 김호중은 그러지를 못하고 10여일간이나 끌다 스스로 ‘만인의 빌런’이 돼버렸다. 수십억이 걸린 대형공연을 줄줄이 앞두고 터진 사건으로 회사도 망할 수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당사자와 소속사가 한패가 된 형국이다.

중차대한 공연을 앞두고 김호중이 대낮부터 술판을 벌인 상황도 인간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성공한 자의 방종의 극치인가, 아니면 공허감과 스트레스의 끝판인가?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개 3가지 유형으로 반응한다. 첫째는 참고 드러내지 않는 ‘억압’, 둘째는 게임, 술, 마약, 섹스 등으로 풀려고 하는 ‘회피’, 셋째는 폭력, 다툼, 분쟁 등 적나라하게 감정을 나타내는 ‘표출이다. 최근 민희진과 하이브 분쟁사건이나, 이강인이 손흥민에게 대든 것이 대표적 ‘표출’이라면 김호중은 ‘회피’다. 할리우드를 비롯 많은 유명인들이 술, 마약, 섹스로 인생을 망치는 경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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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거의 무한정인 언론자유를 누리는 댓글문화. 그릇되고 틀리고 악의에 찬 일부 댓글들을 정리하거나 추방할 방법은 없는가.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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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은 크게 했지만 김호중 사건이 터졌을 때 나오는 댓글들 중에 너무 과격하거나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과 표현들을 보고 당혹감이 들었다.

댓글을 통해 사회적 공분이나 호기심, 자기를 나타내려는 에고를 넘어서, 인간의 원초적인 증오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개·고양이 ‘인권’도 따지며, 상대방의 용모, 옷차림, 성(性), 민족, 인종, 종교 등에 대한 표현도 극도로 유의해야 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 왜 댓글문화는 변하지 않는 것일까.

댓글들은 김호중 경우처럼 명백히 잘못된 사건에만 비판의 칼날을 국한하지 않는다.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들춰 비난한다. 불륜도 아니고, 아이돌스타 미혼 남녀가 사귀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유명한 연예인커플이 헤어져 그중 한사람이 다시 연애하는 것 가지고도 들끓어 결국 헤어지게 만든다.

수개월전 배우 이선균의 마약사건이 터졌을 때 도배되는 댓글과 유튜브 등을 보고 과연 이씨가 제 정신으로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처럼 인성이 나쁘고 파렴치하고 난잡한 사람이 없는 것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잘못은 잘못이지만 ‘존재하면 안될 인간’은 아니지 않는가. 결국 자살로 이어졌다.

정작 내가 무서움을 느낀 것은 그 이후였다. 갑자기 댓글과 유튜브가 애도 일색으로 180도 바뀌었다. 그렇게 악의에 찬, 확신에 찬 준엄한 심판관들은 모두 사라졌다. 다시 익명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때 그들의 원초적 감정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 스마트사회에서 일부 정치인들을 비롯 힘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인터넷 댓글과 여론 문화를 이용한다. 자신을 미화시키거나, 또는 반대하는 쪽에 대해 근거도 없이 부풀리거나 조작하는 여론을 만든다.

사실(fact)이 아닌 의견(opinion)이 난무하고, 그러는 사이 가치관은 혼돈돼, 진실은 실종되며 결국 사회는 제각기 팬덤층으로 분화된다. 미국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번 김호중의 기획사가 한동안 버티기-모르쇠 수법으로 나간 것도 그런 것을 기대해서였는지 모른다. 다행히 경찰수사가 신속하게 진위를 밝혀냈지만.

그러나 정작 이런 증오의 댓글의 가장 큰 희생자는 그걸 만드는 개인들이 아닐까. 군중 속에 숨어 댓글을 통해 상대방을 공격할 때 느끼는 짜릿한 쾌감. 약물이나 마약중독과 같은 도파민 중독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뇌과학은 매사 이런 식의 부정적 판단과 감정이 습관화되면 뇌 속에 부정적인 뇌회로가 형성되고 그에 맞는 스트레스 호르몬 방출이 일상화돼 결국 스스로 심신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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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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