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충무로에서] 집값이 아닌 주거안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수도권 집값 때문에 부동산을 바라보는 정부와 여당의 인식이 다분히 감정적이다. 누가 이기나 끝까지 한번 가보자는 식이다. 부동산 대책이라고 내놓는 족족 집값은 마치 약 올리듯 오르기만 하니 분통이 터질 만도 하다.

그런데 집값과 전쟁을 치르느라 왜 집값을 잡아야 하는지 잊은 것 같다. 목표는 사라지고 집값을 잡아야 한다는 아집만 남았다.

신년사에서 대통령이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며, 서민과 청년들 주거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했다. 집값 안정이 목표가 아니라 주거 안정이 목표라고 밝혔다.

집값 안정과 주거 안정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집값이 올라도 주거가 안정될 수 있고, 집값이 내려가도 주거가 불안할 수 있다. 전 국민이 수도권에만 모여 사는 것이 아니고, 전세 사는 국민도 있고, 월세 사는 국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통령이 언급한 목표와 번지수가 틀렸다.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고 하면서 공시가 올리고 현실화율 높이고 종부세 확대해서 집 하나 있는 사람들을 내쫓으려 했다. 신혼부부와 청년들에게는 대출을 끊어 생애 첫 내 집 마련의 꿈을 꺾었다. 임대사업자들을 옥죄는 바람에 전세금, 월세가 올라 서민 주거는 더 불안해졌다.

투기를 억제하려면 집값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이 상가주택을 사고, 여당 의원들 수십 명이 부득부득 다주택을 지키고, 청와대 비서실장이 강남 집 대신 지역구 집을 팔겠다고 하면서 국민에게 '집값이 더 오르겠구나'라는 확신만 심어줬다.

집값 잡겠다고 법석만 떨었지, 정작 대통령이 제시한 주거 안정과는 거리가 더 멀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정책 실패는 흔한 일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면 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아서 문제다. 주거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데 여전히 집값만 쫓고 있다. 정책을 입안한 당사자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때는 대통령이 나서서 정책 입안자를 바꾸면 된다. 곁에 두고 쓴 참모와 장관을 경질한다는 게 마음 아픈 일인 줄 안다. 그래도 국민이 아픈 것보다는 낫다.

정부가 곧 22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여전히 투기 억제, 실수요자 보호,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자기 잘못을 감추려는 장관과 참모들에게 대통령이 22번째로 속는 것이다.

[경제부 = 이진명 차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