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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일하는 엄마 옆에서 학교 놀이하며 노는 두 딸… 새로운 일상 잘 받아들이는 모습 보니 고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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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워킹맘 이유경씨의 육아기

코로나 사태 이후로 워킹맘 생활은 예측불허의 연속이다.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자 여섯 살 둘째딸이 다니는 유치원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진단검사를 받으러 간다고 해서 출근을 포기해야 했다. 아이가 아파서 유치원에 갈 수 없을 땐 부모님 도움을 받곤 했는데, 대구에서 신천지 확진자가 많이 나왔던 3~4월에는 대구 친정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첫째딸이 지난달 27일 등교를 하면서 사정이 좀 나아지나 싶었다. 하지만 집 근처 서울 여의도 한 빌딩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서 3일에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학교 방침이 매일 등교에서 일주일에 두 번 등교로 바뀌었다. 갑자기 첫째가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자 대구에 있는 친정아버지가 급하게 상경했다. 재택근무를 권장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하필 이날은 불가피한 회의가 잡혀 명동의 회사로 출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로 학교, 유치원 못 가는 아이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돌봄 공백으로 워킹맘들의 스트레스는 커졌다. 매일 아침 "오늘은 소리 지르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눈을 뜬다. 학교나 유치원을 가든, 집에서 EBS를 보든 아이들의 일과 준비를 챙겨주고 내 출근 준비까지 하다 보면 아이들을 향한 내 목소리는 늘 올라갔다. 엄마의 화내기에 점점 익숙해지는 아이들에게 더 큰 소리를 지르고 나서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퇴근하지만, 자기 전에는 한 번 더 아침보다 큰 소리를 질러야 하루가 마무리되는 일상은 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

조선일보

이유경(42)씨는 “코로나 사태로 예측할 수 없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지만 일하는 엄마를 응원하고 새로운 일상을 받아들이는 아이들 덕에 힘을 내고 있다”고 했다. 2일 서울 영등포구 집에서 업무를 보던 이씨가 잠시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유경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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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공동 육아 책임자로서 제 역할을 다해준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일과 육아의 병행, 양성평등 모두 소중한 가치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니까. '여성이 일하기 좋은 회사'라고 자부하는 우리 회사지만 "나 어떡해"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워킹맘 후배도 있다. 아이를 낳을지 고민하는 후배도 있는데, 나는 얘기한다. "육아에서 부모의 역할이 기본이지만 스스로 자라나는 주체는 아이"라고.

일하는 엄마, 새 일상 받아들이는 아이들

잦아진 재택근무 때 지켜본 아이들은 오히려 엄마가 일할 수 있도록 알아서 잘 놀았다. 언니는 선생님, 동생은 학생 식으로 역할극 놀이를 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전에 EBS를 틀어주고 오후에는 '미스터 트롯'을 보여주고 꺼내 달라는 장난감은 다 꺼내주는 일이었다. 첫째는 등교 개학 연기로 석 달 가까이 늦잠을 충분히 자둔 덕분인지 아침 일찍 일어나 설레는 발걸음을 내딛는 늠름한 모습을 보여줬다.

'꼬물꼬물 누워 있으면 숨은 쉬는지 코에 손대봤던 아가가 언제 저렇게 커서 제 키만 한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간다고 나서나' 행복한 울컥함에 아이가 너무 고마웠다. 학교 다녀와서 "엄마 나 주말에도 학교 가고 싶어"라고 신나하는 첫째를 보며 이제 조금씩 일상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나도 '우아한 엄마'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잔소리도 하고 때로는 소리도 지른다. 참다가 폭발하는 것보다 잘못했을 때 바로잡는 것이 아이들도 혼란스럽지 않을 거라는 합리화도 세웠다. 문득 아이들이 언젠가 엄마가 화내지 않아도 알아서 할 수 있는 눈치가 생길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주말이면 귀신같이 일찍 일어나서 아빠에게 매달리는 아이들에게 "왜 엄마한테는 놀아 달라 안 하고 아빠한테만 놀아 달라고 하냐"고 남편이 불평하니 둘째가 이랬다. "엄마가 더 힘들단 말이야. 아빠는 회사에서 쉴 때도 있지만 엄마는 밥 먹을 때도 일하면서 밥 먹어."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일상을 나름대로 방법으로 받아들이며 자라고 있는 게 아닐까.

[이유경 화이자제약 재정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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