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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일사일언] 孝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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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혜숙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저자


숙이가 시어머니를 모셔왔다. 가끔 찾아가 고기근이나 사다주고 용돈을 쥐여주어 효자 흉내를 내었더니, 다니러 온 자식에게 어머니가 응석을 부린 모양이다. 얼마가 지나 숙이는 말했다. "입맛 없다더니 다 잘 먹고 이가 없는 양반이 채소 반찬을 질기다 하고 더 질긴 고기는 잘 먹는다"는 것이다. 철없는 우리는 친구 편이었다. 시어머니 까다로움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간이 지나 숙이가 이를 뽑고 임플란트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채소가 들어가면 잇몸에 부딪혔다. 콩나물이나 시금치는 씹히지 않고 고기는 살과 살의 만남이라 충격이 덜했다. 늙음을 이해하는 데는 세월이 필요했다.

한동네 사는 어린 친구 민정은 농번기에 치매 앓는 친정어머니를 모셔왔다. 고추 심고 모내기하는 오빠 부부 힘을 덜어주려 데려와 먹이고 손주들을 앞에서 놀게 했다. 얘기 주고받고 매끼 잘 차려주니 한결 나아졌다는 것이다. 민정은 치매 노인 모시는 법을 설파한다.

정미의 어머니는 아이들 다 출가시키고 몸이 여기저기 아팠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바느질을 잘했다. 만들고 늘려 아이들에게 입혀 키웠다. 한복집에 가서 천 자투리를 얻어 조각보를 만들어 돌렸다. 손녀들 혼수까지 만들었다.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가족회의 끝에 서울 아들네 집으로 합쳤다. 아들 부부는 고생한 어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타향에서 아픈 곳은 더하고 얼굴도 시름이 가득했다. 아들은 어머니를 달랬다. "어머니는 훌륭한 작가셨잖아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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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들이 여자 형제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동안 어머니가 만들어 주었던 작품을 잘 손질해 보내라. 전시회를 열겠다. 정미는 인사동 전시장에 갔을 때 그만 놀랐다. 대문짝만 한 현수막에 어머니 얼굴과 이름이 적혀 건물에 걸려있고 조각보전은 성황을 이루었다.

효가 무엇인가. 다른 형제와 저울질이 아니고 그렇게 산뜻하게 보듬어줄 자녀가 필요하다. 어머니 쪽으로 시간이 기운 지금, 그런 포옹으로 으스러지고 싶다.

[이혜숙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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