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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허연의 책과 지성]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행복하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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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람들은 보통 '시턴 동물기'를 쓴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이 미국에서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료를 찾아봐도 '미국의 소설가이자 박물학자'라고 나온다. 그런데 시턴이 미국에서 산 기간은 아주 짧다. 그는 72세 때 미국 시민권을 받아 인생 말년에 잠시 미국에 머물렀을 뿐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6세 때 캐나다로 이주한 시턴은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으로 가서 활동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그는 대공황으로 미국이 혼란에 빠졌을 때 겨우 시민권을 얻는다.

유명 작가였던 그에게 미국이 시민권을 주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시턴은 미국의 인디언 정책을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턴은 캐나다에서 살면서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을 가까이서 오래 접했다. 인디언 친구들과 어울리고 그들과 함께 살기도 한 그는 '문명'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진다. 인디언들이 자연과 이웃,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서 그들이 누리는 정신적 풍요에 크게 놀란다.

시턴 저서 중에 '인디언 영혼의 노래'라는 책이 있다. 책에서 그는 이렇게 증언한다.

"원주민들은 인간이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말을 하지 못하는 생명들에 대한 우월함의 증거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면에선 말을 위험한 선물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들은 침묵이야말로 완벽한 평정 상태라고 굳게 믿었다. 그들에게 침묵은 몸과 마음과 정신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 상태를 의미했다. 자아를 지키면서 삶의 폭풍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흔들리지 않는 상태야말로 이상적 마음가짐이며 삶의 방식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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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턴이 보기에 인디언들은 한 명 한 명이 현자였다. 인디언들은 처음엔 백인들을 손님으로 대했다. 하지만 백인들이 약탈자로 돌변해 그들을 내쫓고 학살하면서 평화는 끝이 난다.

시턴은 무기와 도구를 발달시켜 자연을 내 것으로 만들면서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좋은 문명인지, 아니면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어울려 사는 것이 성숙한 문명인지 사색에 빠진다.

시턴은 인디언 문명이 옳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생의 대부분을 인디언과의 전쟁터에서 보낸 존 G 부커 대위의 말을 인용한다.

"인디언들의 조직은 친절하고 관대하며 정의로웠다. 인디언들은 거짓말쟁이를 경멸했다. 그들은 유한한 존재들 중 가장 관대한 존재였다. 그들의 모든 축제에서 과부나 고아는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존재였다."

우리가 서부영화에서 본 인디언의 모습이 얼마나 왜곡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시턴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인디언들이 우리보다 우월한 문명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지 그들은 철을 사용하는 데 능숙하지 못했을 뿐이다. 미학적 측면, 윤리적 측면 그리고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인디언들은 정복자들보다 앞서 있었다. 인디언들이 유럽의 정부 형태와는 전혀 다른 훨씬 효율적인 조직을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물질적 성장을 구가하면서 묻어버린 정신적 충만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행복하지 않으므로.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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