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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크메르제국의 찬란한 유적, 우리 기술로 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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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홍낭시다 사원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한때 인도차이나반도를 호령했던 크메르제국의 찬란한 유적이자 세계문화유산이다. 공통점이 또 있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공적개발원조의 일환으로 복원 사업을 진행 중인 곳. 지난 연말 뜨거운 복원 현장을 찾아 분투하는 두 남자를 만났다.

[홍낭시다 사원 복원하는 백경환]

현지 인부 25명 이끌며 현장 지휘 "한국 이미지 올린… 난 국가대표"

메콩강이 흐르는 라오스 남부 도시 팍세. 한국이 복원하는 '해외 문화재 1호' 홍낭시다 사원이 여기 있다. 홍낭시다는 '시다 공주의 방'이라는 뜻. 크메르 제국의 수리야바르만 2세(재위1113~1150년 무렵)가 최고 장인을 보내 건축했다는 이 힌두 사원은 1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서서히 무너져내려 돌무지 폐허로 남아 있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2013년부터 사원의 중심 부분인 주신전 일부를 해체 복원하고 있다.

그 중심에 백경환(42) 소장이 있다. 8년째 현지 인부 25명을 이끌며 복원을 지휘하고 있다. "처음 들어와 조사할 때만 해도 라오스 쪽에서 의심하는 시선이 많았어요. 조사하는 시늉만 내다가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조선일보

라오스 팍세에 있는 홍낭시다 사원 복원 현장의 백경환(왼쪽) 소장. 오른쪽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 복원을 이끌고 있는 박동희 한국문화재재단 연구원.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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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현장은 열악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오후 5시면 깜깜해졌고, 석재를 연마할 도구 하나 없었다. 일단 라오스 말부터 익혔다. 그는 "밤에는 TV를 틀어놓고 무조건 들었다. 숙소와 현장을 오갈 땐 현지인 운전기사와 끊임없이 대화했다"며 "조금씩 단어가 들리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면서 인부들과 마음을 터놓게 됐다"고 했다.

백 소장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 현장에서 3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 "그때 경험을 살려 홍낭시다를 복원 중"이라는 그는 "절대로 추정에 따른 상상 복원을 하지 않고 최대한 원래 부재를 사용해 복원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석재를 보존 처리하는 '돌 병원'도 세우고, 돌을 다듬는 도구도 직접 제작했다.

라오스엔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인도 팀이 들어와 유적을 보존·복원하고 있다. "처음엔 '코리안 키즈'라 부르던 그들이 이제는 우리 시스템을 벤치마킹한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라오스에서 처음으로 금동요니(힌두교 여신을 상징하는 여근상)가 출토돼 화제가 됐다. "그들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을 되살려주고 있으니 한국 이미지도 덩달아 좋아졌어요. 스스로 국가 대표라 생각하며 현장에 임합니다."

[앙코르와트 되살리는 박동희]

2015년부터 한국 주역으로 활약 "캄보디아 국왕 훈장도 받았어요"

"앙코르와트에 온 지 12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새로워요. 거대한 미술 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죠. 디테일을 알면 알수록 경이롭다고 할까요."

박동희(36) 한국문화재재단 연구원은 자타공인 '앙코르의 남자'다. 한국전통문화학교 졸업 후 일본 와세다대에서 석·박사를 하면서 2008년부터 일본팀 연구원으로 복원에 참여했다. "어릴 땐 박물관에서 도자기 붙이는 게 꿈이었는데 앙코르와트를 복원하는 일본인 교수의 강연을 듣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한국이 앙코르와트 복원에 착수한 건 2015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을 받아 1차로 프레아피투 사원을 복원했고, 지난해부터 2차 사업으로 코끼리 테라스 복원 공사에 돌입했다. 시작부터 한국팀 주역으로 맹활약 중인 박씨는 "일본팀에서 배운 노하우와 기술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앙코르와트는 세계 17국이 유적 보수·복원에 참여하는 경연장이다. 무너지고 방치돼 있던 앙코르와트가 역사에 다시 드러난 건 19세기 말. 밀림 속에서 앙코르와트를 발견한 프랑스가 1908년 복원을 시작했고, 이후 독일·중국·인도·미국 등이 힘을 보탰다. "국가별로 복원 방향이 다르지 않게 전 세계 전문가들이 합의해 복원 원칙을 세웠어요. 부득이하게 원래 석재가 아닌 새 돌을 넣어야 할 땐 장식을 최대한 배제해서 옛 돌이 아니라는 걸 반드시 표시해줘야 합니다."

처음엔 달라진 기후와 환경 탓에 고생을 많이 했다. 설사병에 걸려 석 달간 누워 있어야 했고, 뎅기열에 걸려 병원 신세도 졌다. "이젠 한국에 가면 오히려 아프다"고 했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 후배와 가정을 꾸렸고, 2018년엔 프레아피투 복원 사업 공로를 인정받아 캄보디아 국왕 훈장을 받았다. 그는 "유적 복원은 일방적 원조가 아니라 기술과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고차원적 사업"이라며 "우리가 떠난 뒤에도 이들이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현지 전문가를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팍세(라오스)·시엠레아프(캄보디아)=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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