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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한글 모양과 사운드 정말 좋다"… 28개국 1495개 학교서 한국어 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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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4] 주요국 학교 '제2외국어' 됐다

"발음 흥미롭고 글자가 귀여워요" 한글 배우는 외국학생 13만여명… 세계 곳곳서 매년 수천명씩 늘어

K팝 영향 한국 문화 이해 깊어져… 한국이 IT 기술과 경제 앞서가자 "초등교서도 한국어반 개설 계획"

"아, 야, 어, 여…. 기역, 니은, 디귿!" 열두 살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창문 밖으로 퍼졌다. 지난달 26일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의 퐁카라드 중학교에서 만난 1학년 학생들. 'ㅛ'가 'ㅇ' 위에 올라가고, 'ㅔ'의 좌우가 바뀌는 등 이름 하나 쓰는 데 5분도 넘게 걸렸지만 아이들은 "발음이 흥미롭고 글자가 귀엽다"며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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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의 퐁카라드 중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1학년 학생들이 이장석 한글학교 교장과 수업하던 중 활짝 웃었다. 아래 사진은 지난달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채스워스 차터 고등학교의 한국어 수업 시간. /최보윤 기자·김종태 LA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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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채스워스의 로렌스 중학교도 한국어를 배우는 10대들 목소리로 왁자했다. 제이미 리 선생님에게 "안녕하세요?" 하며 고개 숙여 인사한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나는 아무개입니다. 네 이름은 뭐예요?"라고 묻고 답하는 수업을 하며 즐거워했다. 'BTS'란 질문에 환호성을 지른 줄리아(14)는 "BTS의 모든 게 좋다. 노랫말을 완벽히 이해하고 싶어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다. 닉(14)은 "K팝은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 온 친구가 베스트 프렌드라 관심을 갖게 됐다"며 "한글의 모양과 사운드가 정말 좋다"고 했다.

"경제·IT 발전한 한국 이해하려면 한글 배워야"

해외 초·중·고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실이 급증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제2외국어로 한국어 학습을 하는 학생들은 전 세계 28개국, 1495개 학교, 13만4000여 명으로 매년 수천 명씩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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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채택되는 가장 큰 원인은 K팝 때문이다. 3년 전 한국어를 정규 과목으로 채택한 미국 채스워스 로렌스 중학교의 마릴루 피클리아포코 교장은 "한국어반이 개설되기 전부터 학생들 사이 한국 음식과 K팝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며 "나 역시 '모모랜드'의 팬"이라며 웃었다. 해마다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아이들이 늘자 스페인어반을 폐강하고 8학년에만 한국어 2개 반을 개설했다. 한국어 수업은 한국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다. 채스워스 차터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레마(16)는 "슈퍼주니어의 이특을 좋아해 한국어를 배우다 세종대왕 스토리를 알게 된 뒤 한글 공부에 더 매료됐다"면서 "코리아타운에 가서 한국 음식 먹을 때가 정말 좋다"고 했다.

교육자들은 한국어를 채택한 또 다른 이유를 말했다. 퐁카라드 중학교 마리 마니파시에 교장은 "한국어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삼성, 현대 같은 글로벌 한국 기업에도 관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정규 과목 승인을 담당한 몽펠리에 교육청 브루노 베나제크 장학관은 "IT 기술과 경제 분야에서 앞서가는 한국을 잘 이해하려면 어릴 때부터 한글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내년부터는 초등학교에서도 한국어반을 개설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인 사회 지대한 노력도 한국어 열풍에 기여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제2외국어로 택하는 경우가 70%에 달하는 미국 교육계에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는 데는 한인사회 역할도 지대했다.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어진흥재단이 대표적이다. 25년 전 출범한 재단은 미국 공립학교에 한국어반 개설은 물론 한국어 교재 개발, 한국어 교사를 양성해온 비영리단체다. 모니카 류 이사장은 "한국어를 AP(Advanced Placement·대학과목 선이수제) 과목으로 승격시키는 게 목표"라며 "AP로 채택되려면 한국어 수업을 개설한 학교가 최소 250곳은 돼야 한다. 현재 189곳이라 갈 길이 멀다"고 했다.

한인사회의 열정에 힘입어 캘리포니아주는 올해부터 10월 9일을 '한글데이'로 제정했다. 샤론 쿼크-실바(민주) 의원실에서 일하는 박동우(66) 보좌관이 산파 역할을 했다. 박 보좌관은 본지 통화에서 "미국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려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한인회 도움을 받아 우리 한글을 널리 알리자는 편지를 의회에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상·하원에서 모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고 말했다.

[몽펠리에(프랑스)=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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