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지난 9월 30일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채용 및 정규직 전환 등 관리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발표 후 적지 않은 언론 보도가 있었고 보름도 더 지난 뉴스입니다만, 굳이 이 내용을 다시 꺼내든 것은 숱한 보도 속에 잘 다뤄지지 않은 중요한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친인척 채용 알박기’ 의혹입니다.
인천공항공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취임이후 외부일정으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입니다. 당시 문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인천공항공사는 '연내(2017년) 비정규직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당당하게 약속했습니다.
그렇게해서 인천공항공사는 현정부의 이른바 '정규직 전환 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급부상했지만, 이후 현재까지 1만명의 정규직 전환 대상자 중 3200여명을 협력사 직원이 아닌 정규직(정확히는 자회사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대통령과의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인천공항공사 직원의 친인척 불공정 채용 의혹이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감사 결과로 드러났습니다. 이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무슨 일?
우선 감사원이 9월 30일 발표한 '비정규직 채용 및 정규직 전환 등 관리실태' 감사 결과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감사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한 날이자, 인천공항공사가 정규직 전환을 선언한 날이기도 한 2017년 5월 12일부터 2018년 11월 1일 사이 인천공항공사의 협력사가 신규 채용한 3604명을 대상으로 채용 과정을 감사했습니다.
이 내용을 감사원이 들여다 본 이유는 명확합니다. 협력사 직원은 향후 순차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정규직 전환을 노리고 소위 '힘있고 빽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나 빽을 이용해 불공정한 채용을 주도하거나 묵인하지 않았는지 살펴보기 위한 것입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다소 충격적입니다.
해당 기간 인천공항공사의 협력사가 신규 채용한 3604명 중에는 인천공항공사 임직원의 친인척 20명이 포함돼 있고, 협력사 관리자급의 친인척도 24명이나 있었습니다. 친인척이라고 하지만 ‘사돈의 팔촌’처럼 먼 친인척도 아닙니다.
인천공항공사 임직원의 친인척 20명의 면면을 보면 공사 직원의 자녀가 4명, 배우자가 3명입니다. 형제나 배우자의 형제도 있고, 형제의 자녀(조카)도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 회사의 협력사가 사람을 뽑는다는데 한번 응시해봐라. 나중에 정규직 시켜준다더라'고 알려줬고 이후 공정한 절차를 거쳐 채용됐다고 가정해보면 그래도 문제 삼을 건 그리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 결과 이들은 모두 내부자로 구성된 면접관에게 면접을 봤거나, 서류심사 과정이 확인 불가능하거나, 심지어 공개채용 여부도 확인 불가능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헌법기관 감사원이 들여다봤는데 말입니다. 이들 20명에겐 '빽이 곧 실력'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빽'이었는지 감사원이 감사보고서에 뚜렷하게 기재한 내용 일부를 보겠습니다.
인천공항공사의 보안경비를 맡은 협력업체 A사는 자신들의 업무를 관할하는 인천공항공사 실장의 아들을 2017년 8월 1일 채용합니다.
인천공항공사의 기계시설 유지관리를 맡은 협력업체 B사는 2017년 7월 18일 자신들의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장인 인천공항공사 팀장의 조카를 채용합니다.
소위 말하는 '아빠찬스' '삼촌찬스'의 사례에 해당합니다.
협력사에겐 ‘절대 갑(甲)’의 지위인 공기업 인천공항공사의 임직원 채용비리 의혹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문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지금은 협력사 직원 신분이어도 향후 다른 사람들과 섞여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협력사들은 늦어도 내년 상반기(인천공항공사의 계획에 따르면)에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아빠·엄마찬스' '삼촌찬스' 등 온갖 빽을 동원한 복합적인 '가족 채용알박기' 사례로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입니다.
감사원도 감사보고서에서 "이대로 두면 협력사에 불공정·불투명하게 채용된 인천공항공사 임직원과 협력사의 친인척이 정규직 전환에 부당하게 편승할 우려가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감사원은 구본환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향해 "공정하고 투명하지 않은 과정을 통해 채용한 것으로 확인된 이들 친인척에 대해선 정규직 전환시 다른 전환 채용 대상자보다 엄격한 평가 방안을 마련해야한다"고 통보했습니다.
감사원은 또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협력사가 채용하는 직원에 대해선 공개경쟁채용 도입, 서류 및 면접전형에 외부위원 위촉과 같은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협력사가 준수하도록 적극 대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마디로 인천공항공사가 협력사 채용이라는 핑계로 수수방관하지말고, 적극 나서라는 것입니다.
TMI①인천공항은 대통령에게 미필적고의 범했나
감사원 감사결과와 별도로 그동안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문제를 취재하면서 유독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았을 당시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연내(2017년)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인천공항공사는 비정규직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비정규직을 대거 늘렸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워치가 입수한 '인천공항공사 협력사 계약현황' 자료에 따르면, 인천공항공사는 2017년 6월 1일자로 9건의 용역계약을 새로 맺었습니다. 한 달 뒤 7월 1일자로 7건의 용역계약을 또 체결했습니다. 그 결과 6월 821명, 7월 2898명 등 불과 두 달 만에 총 3719명의 비정규직이 새로 생겨납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듬해 문을 여는 제2여객터미널의 보안경비, 환경미화, 탑승교 운영, 통합시스템 관리 용역을 담당하는 회사에 들어갔고, 기존의 제1여객터미널의 보안검색과 보안경비 승강설비유지관리를 맡은 회사에도 들어갔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문재인 대통령 바로 앞에서 '연내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한지 불과 두 달이 지나지 않아 비정규직을 3719명이나 더 늘린 것인데, 특히나 계약기간도 일제히 3년으로 맺었습니다. 이건 이미 당시부터 2020년까지 최소 3년간은 비정규직 1만 명 전환 계획은 지킬 수 없는 공염불이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인천공항공사는 대체 왜 그랬을까요. 이와 관련 인천공항공사 측은 기자의 질문에 "이미 계약하기로 한 용역계약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민주노총 인천공항지부는 이 내용에 대해 "인천공항공사의 용역(아웃소싱) 특수계약조건에는 사회·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계약을 변경 또는 해지할 수 있고, 대통령 방문 이후 정규직 전환 선언은 그런 조건에 부합하기 때문에 인천공항의 설명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설령 (이미 계약을 약속한 용역이 있었고 그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는) 인천공항공사의 설명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문제는 있습니다. 인천공항공사는 대통령이 방문했을 당시에 이미 연내 비정규직 1만 명 전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는 논리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내용을 취사선택하더라도 인천공항은 대통령 앞에서 약속한 연내 비정규직 1만 명 정규직 전환이라는 약속을 금세 파기한 것이고, 3719명의 비정규직을 단숨에 늘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인천공항의 협력사 직원들은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들어온 협력사 직원 가운데 인천공항공사 직원의 친인척들이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기자는 친인척이 누구인지, 또 그 친인척의 친인척이 되는 인천공항공사 직원이 누구인지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천공항공사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2019년 10월 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공사 회의실에서 열린 인천국제공항공사–자회사 CEO간 제1회 정례회의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 구본환 사장(사진 왼쪽에서 3번째)이 인천공항 자회사 인천공항운영서비스(주) 정태철 사장(사진 왼쪽), 인천공항시설관리(주) 장동우 사장(사진 왼쪽에서 2번째), 인천공항에너지(주) 김창기 사장직무대행(사진 오른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천공항국제공사는 비정규직 1만명의 정규직 전환을 선언하면서 그중 7000여명은 자회사를 통해 고용하겠다고 밝혔다.(사진=인천국제공항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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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②노조는 왜 전수조사 얘기하며, 징계요구는 하지 않나
인천공항공사 노동조합이 최근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노조는 비정규직 과정에서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졌으니 감사원의 감사에 포함되지 않은 비정규직(약 6000여명)까지 전수조사를 해서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을 밝혀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한걸음 더 들어가 보면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습니다. 이미 감사원에 의해 공식적으로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 사람들이 뚜렷하게 있는데, 이들에 대한 추가 진상조사 또는 징계조치를 회사 경영진에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 성명을 발표한 노조는 1만 명이 넘는 인천공항공사 종사자 가운데 1000여명 남짓한 정규직으로만 구성된 노조인데요.
자신들의 직장 동료이거나 상사일 수도 있는 사람들의 자녀와 조카, 배우자 등이 불투명한 절차를 거쳐 가까운 미래에 정규직으로 전환될 자격을 얻은 문제는 왜 강하게 얘기하지 않으며 전수조사를 강조하는 것일까요.
TMI③인천공항은 왜 감사결과 침묵하며 투명경영 외치나
인천공항공사는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이 개항(2001년 3월 29일)하기 1년 2개월 전인 1999년 2월1일 만들어진 공기업입니다. 설립 때부터 공항운영과 관련한 대부분의 업무를 용역으로 돌렸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인천공항을 이용할 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습니다.
공항 대합실에 울려 퍼지는 안내방송 목소리의 주인공부터, 출국장 보안검색요원, 탑승동으로 이동하는 셔틀트레인 관리원, 공항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주차장 안내원, 안내데스크 직원, 유실물센터 직원, 공항내 버스승강장 안내원 등 공항에서 수없이 마주친 그들은 모두 비정규직입니다.
공항이용자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공항의 각종 기계시설을 유지·관리하고 공항설비가 돌아가도록 에너지를 공급하는 이들, 수화물 운반을 책임지는 이들, 승객과 항공기를 연결하는 탑승교를 운영하는 이들 모두도 비정규직입니다. 심지어 TV프로그램에 이색 직업으로 곧잘 소개되곤 했던 공항 활주로에서 조류를 쫓아내는 사람들마저 비정규직입니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2016년 발표한 '인천국제공항공사 외주화 임금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란 보고서에서 "공항공사는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 11년 연속 1위 달성이라는 화려한 성적을 선전하고 있지만, 전체 직원 중 85%가 넘는 외주위탁 노동자들의 존재는 무시하고 있다"며 "공공기관 비정규직 남용의 대표적 사례인 공항공사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2일 취임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하며 전환점을 맞이할 것으로 보였던 '비정규직 천국' 인천공항공사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감사원의 감사결과 ‘친인척 알박기’ 의혹이라는 결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드러났음에도 많은 언론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았고, 인천공항공사는 지금까지 보름이 넘도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인천공항공사는 감사원 결과가 나온 다음날인 10월 1일 구본환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투명·윤리경영 선포식'을 개최하고 투명경영헌장을 발표했습니다. 투명경영헌장의 내용에는 모든 업무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전에 나온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과연 구본환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생각하는 공정성과 투명성 그리고 윤리경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기사는 감사원의 비정규직채용 및 정규직 전환 등 관리실태 감사보고서(2019년 9월 30일),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화 추진현황 자료(2019년 4월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자료, 사회공공연구원의 인천국제공항공사 외주화 임금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2016년 7월), 기타 감사원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을 대상으로 직접 취재한 내용을 종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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