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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총파업 7분전 '타결 쇼'… 시민 볼모로 인력 더 늘린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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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公 노조, 지연 전술로 246명 증원 등 요구 상당부분 관철

지방 공기업들이 모두 시행 중인 임금피크제도 폐지 건의하기로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노사 임금 협상이 밤샘 줄다리기 끝에 16일 오전 가까스로 타결됐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노조가 총파업 돌입 시기로 예고한 오전 9시를 7분 앞둔 오전 8시 53분쯤 노사 협상이 타결됐다고 16일 밝혔다. 날이 밝아도 타결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상당수 시민이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불편을 겪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오후 유튜브에 '지하철 파업 극적 타결의 숨은 해결사'라는 영상을 올리고 파업 7분 전 타결의 성과를 강조했다. 시민들은 "협상을 조기에 마치지 못해 불안에 떨었는데 시장은 치적 홍보에 열중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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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박원순(가운데) 시장이 서울 성동구 서울교통공사 본사에서 총파업 돌입 7분을 앞두고 노사 협상을 타결한 윤병범(오른쪽) 서울교통공사 노조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김태호 교통공사 사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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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협상에서 노조가 요구 사항을 얻어내기 위해 벼랑 끝 작전을 펴면서 결과적으로 사측이 휘둘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인 교통공사 노조는 전날인 15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성동구 교통공사 본사에서 사측과 교섭을 벌였다. 노조는 교섭 시작 7시간 만인 오후 10시쯤 돌연 "사측이 예정된 시간에 협상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며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퇴장했다. 그러나 퇴장 이후에도 물밑 협상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정식 협상은 16일 오전 3시에 재개됐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지연 전술을 쓴 노조는 요구 사항을 상당 부분 관철시켰다. 우선 노선 연장과 역 신설에 따른 인력 수요를 모두 신규 채용으로 채우라는 요구가 수용됐다. 교통공사는 내년 상반기 개통 예정인 지하철 5호선 연장 구간 하남선 5개 역과 올 연말 개통 예정인 6호선 신내역에서 근무할 인력이 필요하다. 사측은 기존 인력을 재배치하면 인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조 측에서 근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며 전부 새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지하철 인력 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위에 도달해 있는데도 서울시와 교통공사는 비용 증가를 이유로 인력 충원에 반대한다"며 비난해왔다.

이날 협상에 따라 교통공사는 총 246명을 신규 채용해달라고 서울시에 건의하기로 했다. 이는 올해 교통공사 공채 인원인 800명의 30%에 해당하는 규모다. 협상 관계자들 사이에선 "형식은 건의이나 사실상 결정된 걸로 보면 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추가 재정 투입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내년부터 연간 약 86억원이 더 필요하다. 교통공사는 통합 출범 첫해인 2017년 5254억원 적자를 낸 데 이어 지난해에는 538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노조의 요구에 따른 증원으로 경영 상황 악화를 자초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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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공사 측은 추가 인건비 중 상당액을 하남시 예산으로 충당할 방침이다. 결국 시민 혈세를 쏟아부어 노조 요구를 감당하게 된 것이다. 공사 측은 "하남시가 5호선 연장의 수혜자이기 때문에 예산을 대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하남시에서는 인건비 지원으로 시 재정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이 노조와 함께 임금피크제 문제 해소와 폐지를 공동으로 건의하겠다는 조항도 있었다. 임금피크제는 전국 지방공기업 146곳에서 동일하게 시행되고 있다. 기관별로 적용 연령과 삭감률은 다르다. 교통공사는 전국 지방공기업 평균 감액률인 40.7%에 한참 못 미치는 30%를 적용한다.

박 시장은 이날 노사 최종 협상 타결이 사실상 확정된 후 서울교통공사 협상장으로 나갔다. 공사 관계자는 "시장은 노사 합의 후 와서 사진을 찍은 것 외에는 타결을 위해 따로 도움을 준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숨은 해결사'를 강조한 유튜브 영상에는 '협상 조율을 위해 협상장 도착'이라는 자막이 달려 있다. 시 안팎에서는 "밤새 불안에 떤 시민들을 배려했다면 자랑이 아니라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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