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1 (금)

[강성민의명저큐레이션] ‘땅과 바다’의 대결 구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인류사 공간적 사유 확장 과정 정리 / 우리 미래는 바다도 땅도 아닌 ‘자강’

세계일보

“세계사는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 대양의 힘에 대한 땅의 힘의 투쟁의 역사란다.”(카를 슈미트의 ‘땅과 바다’ 17쪽)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의 ‘땅과 바다’는 16세기부터 20세기의 지구 문명 전개를 땅과 바다의 대결구도로 정리해낸 책자다. 신화적 상상력과 심오한 사유, 철학자 헤겔로 위시되는 독일 대륙철학의 지적 유산 위에서 힘의 확장 원리를 체계화하고자 한 시도라는 점에서 쉽게 읽어낼 수도, 마냥 받아들일 수도 없는 그런 종류의 내용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태로 쓰인 이 책은 땅과 바다를 매개로 인간의 공간적 사유가 확장돼온 과정을 알게 해줄 뿐만 아니라 역사를 힘과 에너지, 욕망과 충동이 서로 부딪치며 융화하는 거대한 유기체적 율동으로 바꿔 놓음으로써 펄떡이는 한 마리의 고래를 손에 잡은 듯한 매혹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바다에 자신의 전 존재를 쏟아부은 나라가 결국 강자로 군림했다는 점이 이 ‘땅과 바다’의 기본적인 판단이다. 19세기에 들어와 영국이라는 섬나라가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증기기관에 날개가 달리고 무선과 레이더의 조종을 받는 제공권이 중요해지면서 영국의 해상 지배력도 곧 쭈그러들었다. 20세기 초 미국의 해군제독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은 영국과 미국이 합병해 영국이 더 이상 쭈그러들기 전에 미국이라는 구조선이 그 찬란한 제국적 유산을 아메리카 대륙에 이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머핸의 주장에 대해 슈미트는 “노련한 대양항해자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대항해시대인 16, 17세기의 세계사적 연맹이 이룩한 분출의 에너지와는 무관한 지정학적 안정에 대한 보수적 요구에서 나온 것”이라고 폄훼했다. 슈미트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결단과 행위로서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땅과 바다’를 읽는 동안 슈미트의 인간관과 역사관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유럽적 교양과 지성을 갖추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적 인간관이 전제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슈미트가 그린 공간의 질적 변화는 욕망하고 발전하는 인간의 꿈을 전개시키는 무대로는 훌륭한 깊이와 실제감을 제공해 주지만 인간 자체의 반성적 풍부함, 갈등의 대화적 해결을 통한 공동 번영의 구상과는 잘 어울릴 수 없는 세계관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땅과 바다’가 발간된 1942년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었고,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국민으로서 고통 가득한 현실세계를 마주하기보다는 거시적인 이야기를 통해 현실세계의 고통에서 멀어지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또는 슈미트는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 비해 해양으로의 진출을 전혀 해보지 못했던 독일의 과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해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해양세력이 될 수도, 대륙세력이 될 수도 없었던 우리의 입장에서는 부럽기만 한 얘기로 들린다. 역사적으로 두 세력의 중간에서 줄타기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미·중 양국의 경제전쟁에서 양쪽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때론 이러한 상황이 지정학적 족쇄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헛된 꿈을 꾸지 않고 긴장 속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기술을 갖게 해준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미래는 바다도 땅도 아닌 자강(自强)에 있는 게 아닐까.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