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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기자24시] 신남방정책과 `한국판 E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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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주말 태국 방콕에서 영자신문 방콕포스트와 동아시아·아세안경제연구센터(ERIA)가 주최한 세미나 현장. 20년 후 아세안의 과제와 액션플랜 등을 담은 '아세안 비전 2040'을 공유하는 자리에서 림족 호이 아세안 사무총장이 기조연설 말미에 "ERIA 보고서를 참고하고 있다"고 언급하자 니시무라 히데토시 ERIA 사무총장이 벌떡 일어났다. 니시무라 사무총장은 참석자에게 보란 듯 대형 스크린에 뜬 'ERIA' 문구를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본부를 둔 ERIA는 2006년 일본이 글로벌 경제전략의 일환으로 '동아시아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만들겠다는 구상에서 출발했다. 이듬해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인도 등 16개국의 만장일치를 거쳐 2008년 출범했다. 16개국이 ERIA 이사회에 참여하지만 수장인 사무총장은 일본 경제산업성 관료 출신이다. 최고운영책임자 등 ERIA 내 주요 직책도 일본 정부에서 파견된다. ERIA 참여국이 갹출해 비용을 대지만 일본 비중이 90%로 압도적이다.

ERIA는 아세안 정부의 국정과제 용역을 흡수하며 인프라스트럭처, 에너지, 디지털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보고서를 쏟아내고 있다. '아세안 비전 2040'도 태국이 의장국 때 활용하기 위해 2017년 말 ERIA에 발주했다. ERIA는 1년 반에 걸쳐 전문가 60명과 100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완성해 태국 외교부에 전달했다. 아세안 정책 당국자가 이를 읽고 토론한다. ERIA는 '아세안의 조력자'이지만 일본의 치밀하고 전략적인 채널로도 볼 수 있다. 일본은 ERIA를 통해 아세안 의사 결정자들의 머릿속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정책 제언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아세안 의장국은 베트남이다. 아세안에선 한국의 강점으로 지식 공유 등 소프트파워가 꼽힌다. 한국판 ERIA가 아세안 최대 투자처이자 핵심 파트너인 베트남과 미래 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아세안 국가와 나눴다면 어땠을까. 한국이 신남방정책을 계기로 성과를 내려면 ERIA와 같은 지식 플랫폼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국제부 = 임영신 기자 yeungim@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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