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 식민 피해자 모독…역사 지우려해”
부산서도 한·일 연대의 목소리
“보이콧은 혐한 조장 기업·단체에 집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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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온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경제보복을 가하는 아베 정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일본 활동가들의 입에서 먼저 터져 나왔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국제회의장에서는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 주최한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한국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나온 지 9개월이 지났지만 피해자 인권은 회복되지 않았고 아베 정권은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날 회의의 첫 발언자인 야노 히데키 일본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의 말이다. 야노 국장은 1995년부터 25년째 강제동원 피해자의 법정 다툼을 지원하는 등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와 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해왔다. 일본에서 한국인 유가족을 도와 유골 반환 문제를 놓고 계속 일본 정부를 압박해온 우에다 케이시 ‘전몰자의 유골을 가족의 품으로 연락회’ 활동가도 “아베 정권은 식민지배의 피해자인 당사자와 유족들을 모독하고, 가해의 과거를 일본 국민에게 잊히게끔 하면서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지우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양국 시민이 연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야노 국장은 “20년 이상 싸워온 재판투쟁이 중심이 된 강제동원 피해자의 투쟁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의 어둠을 폭로하고 사법판단의 벽을 넘어 권리회복을 위한 길을 열어왔다”며 “한-일 관계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관계라고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회복을 위한 한-일 시민의 25년간 이상 연대의 힘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아베가 국제사회를 상대로 ‘강제동원은 없었고 한국 정부가 국제법을 어기고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한-일 법률가, 역사학자,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공동으로 강제동원 문제와 청구권 협정에 대한 의견서, 지난해 대법원 판결문 해설서 등을 만들어 영어로 번역한 뒤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기구에 제출하는 방법 등을 제안했다. 강제동원 문제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더 널리 알려야만 배상을 거부하는 아베 정권과 일본 기업을 압박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이번 한-일 경제전쟁과 역사전쟁이 장기적이고 전면적인 양상을 띌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낙관적인 전망도 내놓았다. 특히 야노 국장은 일본제철, 후지코시 등 전범기업들이 과거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화해했던 사례를 들며 “정치적 환경과 조건만 성립되면 기업들이 화해, 한국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의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한-일 양국이 새로운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일본 근현대사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한-일 우호나 그 기반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이 인정된 것은 인류사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존엄 회복과 정의 실현의 지평에서 새로운 한-일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며 “식민지배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는 진지한 접근만이 두 나라 사이에 신뢰를 만들고 나아가 동북아 평화와 인권을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제동원 배상이 금전적인 배상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강제동원은 명백하게 국제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가지는 권리는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국한되지 않고 국제사회가 보장하는 배상과 피해회복의 권리를 포함한다”고 지적했다. 조 연구위원은 구체적으로 △유해 조사와 발굴 △피해자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공식 선언 △사실인정과 책임의 수락을 포함하는 공적 사과등도 배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강제동원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를 되짚고 한-일 시민 연대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에는 열네살에 여성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일본 도야마 후지코시 강재공업 공장에 일해야 했던 강제동원 피해자 김정주(88) 할머니와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에서 강제 노역을 한 김용화(90) 할아버지도 참석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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