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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수요시위는 희망·평화·정의”…길원옥 할머니의 ‘침묵’ 대신 채운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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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회 수요시위이자 7차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시민 2만명 운집…‘당신에게 수요집회는?’ 질문에

“정의실현” “미안함“ “희망” “평화의 원점” 답해

길원옥 할머니 “1400회 특별하지 않아…바라는 건 사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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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경기도 평택시에서 온 유여울(12) 양은 얼마 전 산 밀짚모자를 위안부 소녀상 머리에 씌워줬다. 이날 서울의 최고기온은 36도. 유양은 “햇볕이 너무 강해 소녀상도 뜨거울 것 같아 집에서 모자를 챙겨왔다”고 말했다. 평화의 소녀상 주변으로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누군가는 흰 꽃다발을 놓고 가고, 누군가는 소녀상의 목에 보라색 스카프를 걸어줬다. 시민들이 소녀상 옆에서 “사죄하라”를 외치며 사진을 찍는 풍경은 떠들썩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유양은 “위안부 할머니들께 힘을 보태고 싶어서 수요시위에 왔다”고 말했다.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의 주최로 열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이날 1400회를 맞이했다. 이날은 28년 전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날을 기억하자는 의미의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기도 하다. 27년 전 위안부 할머니와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30여명이 함께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 이후, 이 자리에 이날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길원옥(91) 할머니와 시위가 끝나갈 때쯤 얼굴을 비춘 김경애(91) 할머니 둘 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건강이 악화되면서 떠난 위안부 할머니의 빈자리를 시민 2만명(주최 쪽 추산)이 대신 채웠다. 시민들은 ‘우리가 증인이다’ ‘끝까지 함께 싸웁시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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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3개 도시를 비롯해 일본, 미국, 대만, 호주 등 세계 12개국 37개 도시 57곳에서도 연대해 1400차 수요시위에 힘을 보냈다. 정의기억연대는 “1992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수요시위’가 대한민국을 넘어 일본, 그리고 세계 각국 시민들의 위드 유(with you)를 만들어냈다”며 “수요시위가 전시 성폭력의 추방을 위한 연대를 만들고 전시 성폭력 생존자들의 주체적인 운동을 일구어내는 희망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더운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싸워서 이기는 게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오후 12시께 보라색 블라우스, 하늘색 스카프에 오른쪽 손목에는 위안부를 상징하는 ‘노란 나비 팔찌’를 찬 길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양쪽에 사람 2명이 부축해야 간신히 설 수 있는 상황에서도 길 할머니는 시민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시민들은 할머니께 “사랑한다”고 외쳤다. 길 할머니는 정의기억연대가 무대 옆에 마련한 파란색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극단 ‘경험과 상상’의 배우들이 위안부 소녀를 연기할 때는 무대 쪽으로 몸을 돌린 채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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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원옥 할머니에게 수요시위란?

애초 시위가 시작할 때 인사만 하고 일어나려던 길 할머니는 극단의 공연과 북한에서 보내온 연대 성명까지 듣고 난 뒤 오후 12시30분이 돼서야 자리를 떴다. 시민들은 자리를 뜨는 길 할머니 뒤로 “할머니 건강하세요!”를 외치기도 했다.

“나는 오늘 1400회라고 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매주 온 곳 오늘도 온 것이죠. 바라는 건 빨리 사죄받고 이 일이 해결되는 일 뿐이에요.” 길 할머니는 <한겨레>가 “나에게 수요시위는 ○○○입니다”라는 손팻말에 말씀을 남겨달라고 하자 한참 빈칸을 바라보며 입을 꽉 다문 채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 시민들 바꿔놓은 수요시위…“정의 실현” “희망” “평화의 시작”

시민들은 길 할머니가 침묵으로 남긴 빈자리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채워갔다. 10살 딸과 함께 온 김현숙(42)씨는 “나에게 수요시위는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평소 사회 문제에 항상 관심이 많았지만 수요시위가 1400번이나 되는 동안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수요시위는 미안한 마음 그 자체다”라며 “앞으로 이런 현장에 더 나와서 할머니께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위안부 소녀가 그려진 뱃지를 가방에 달고 온 김미정(21)씨는 “수요시위란 ‘정의 실현’”이라고 했다. 김씨는 “수요시위에 참가한 뒤, 나눔의집 봉사활동, 위안부 관련 강연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런 행동들이 모여 일본에 사과를 촉구하는 정의 실현이 가능해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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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수요시위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반 친구들과 대중가요를 개사해 부른 인천 인명여고 학생 이진영(17)양은 “수요시위는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양은 “오늘 수요시위에 온 시민들이 정말 많았다.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고 모인 시민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보고 희망을 느꼈다”며 “수요시위는 일본의 사죄와 법적 배상 등 문제해결을 위한 희망의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5년부터 수요시위 자원봉사를 한 임계재(66)씨에게 수요시위는 ‘감사함’이라고 했다. 임씨는 “수요시위를 통해 내가 사회에 빚진 걸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수요시위에 500번 넘게 참여하며 돼지저금통을 들고 할머니들을 위한 후원금을 모았다. 예전에 김복동 할머니가 나를 ‘돼지엄마’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왔다는 고등학교 사회과 교사 후지와라 사토시(59)는 “나에게 수요시위는 ‘평화의 원점’입니다”라고 했다. 이제까지 수요시위에 10번 정도 참석했다는 후지와라는 “전쟁에서 가장 약자, 피해자였던 할머니들을 생각하고 그 분들의 삶을 다시 기리는 게 평화의 출발점이라 생각한다”며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인데, 막상 와보니 한-일 시민들이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바뀌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해 화가 나고, 일본 정부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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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정의가 공존하고 세계로 평화의 메시지를 확산하는 수요시위이지만, 시민들은 언젠가 시위가 막을 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흥열(53)씨는 “시위가 1400회까지 올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문제 해결이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일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빨리 사죄하고 이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대협 창립멤버이면서 1회 수요 시위 때부터 현장을 지켜온 김혜원(84)씨도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 수요시위가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씨는 “나에게 수요시위는 ‘내 투쟁의 핵심’이다. 27년이 지났지만 문제 해결은 오히려 후퇴하고, 위안부 피해자 1세대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걱정이 많았다”며 “처음에 수요시위는 외로운 운동이었지만 오늘 이렇게 많은 젊은 세대가 함께 해주는 것을 보니 대견하고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는 일본 정부에 7가지 요구사항을 구호로 외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전쟁범죄를 인정하라” “진상을 규명하라” “공식 사죄하라” “법적 배상하라” “전범자를 처벌하라”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교육하라” “평화비와 사료관을 건립하라” 1400번째 외침이다.

오연서 김혜윤 김윤주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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