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펫로스 증후군 앓은 이들 많아
반려동물 죽은 후 상실감에 우울한 증세
죄책감 느끼는 이도 많은 편
비슷한 경험 공유·장례·편지쓰기 등 도움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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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기대 의지하고 교감하던 사이. 하나가 먼저 떠나면 그 빈자리는 말할 수 없이 크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반려인들이 겪는 감정은 사회적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상실에 따르는 증상들을 일컬어 ‘펫로스증후군’이라 부른다. 지난달 30일, 동물 관련 책만 출간하는 1인 출판사 <책공장 더불어> 김보경 대표와 ‘서울 펫로스심리상담센터 안녕’의 임상심리전문가 조지훈 원장이 만나 반려동물의 사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펫로스 증후군은 어떤 개념인가?
조지훈 원장(이하 조) 반려동물의 상실로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증상들을 경험하는 심리적 문제를 말한다. 반려동물의 교통사고 장면을 목격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도 이어지기도 한다. 노환으로 고통스럽게 떠나도 비슷한 증상을 경험한다. 국내는 반려동물 사별을 이유로 직장에서 휴가를 내면 유난스럽다는 식의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동물을 키워’ ‘그럴 때일수록 일에 집중해서 잊어’ 같은 조언을 하는 이가 많은데 도움이 안 된다.
김보경 대표(이하 김) 수의사들이 보호자들에게 ‘최선을 다했으니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라고 말해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보호자는 자신의 반려동물을 치유한 수의사들에게도 적절한 위로를 듣지 못하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수의사들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들이 많다. 내 개가 떠나고 이런 말을 들었다. ‘대표님 개는 19년을 살고 천수를 누렸기에 행복했을 거예요. 너무 슬퍼 마세요.’ 악의가 없는 걸 알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이들을 응원하고 도움을 주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조 비슷한 경험이 없다면,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좋다. ‘네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 하지만 네가 반려동물이 떠난 이야기를 해줘서 감사하고 고맙다’는 정도의 말이면 된다. 사람들은 ‘그래도’라는 말을 잘한다. 다묘 반려인의 고양이 한 마리가 죽었을 때 ‘그래도 다른 고양이들이 있잖아’라고 한다거나, 강아지가 죽은 사람한테 ‘그래도 네 아들은 이번에 좋은 대학교 들어갔잖아’는 식의 말은 안 하는 게 맞다. 위로의 말로 ‘그래도’는 최악이다.
김 기본적으로 한국은 동물의 가치가 현격히 낮은 사회다. 이런 현실에서 반려동물의 이야기를 쉽게 하기 어렵다. 요즘은 동물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가 많다. 이들의 유대는 끈끈하다.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들과 슬픔을 나누는 것도 한 방법이다.
- 1인 가구보다 가족이 함께 키우는 쪽이 반려동물의 상실을 더 견디기 쉽지 않을까?
김 그렇진 않다. 구성원마다 반려동물이 각자에게 어떤 존재인지 다를 수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회사 간 사이에 개가 세상을 떠났는데, 부모님은 자식이 동물에 너무 집착한다고 생각해서 퇴근하기 전에 묻어버렸다. 그런 사건을 겪고 몇 년 동안 부모와 멀어진 상태로 지낸 이도 있다. 반려동물 키우는 1인 가구끼리의 연대감이 두텁다. 어떤 이의 리트리버가 노견이 되면서 인지장애증후군이 오고 밥도 안 먹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리트리버는 손님이 오면 기운이 났다. 견주들이 그 집에 가 도움을 줬다. 서로 돕는 거다.
조 1인 가구도 친구나 의지하는 가족이 가까운 거리에 사는 경우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본인이 가용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없는 경우, 펫로스 증후군의 충격이 크다. 사별 사유에 따라 차이도 있다. 의료사고 등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죽음, 반려동물의 죽음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내 의사와 관계없이 사후처리가 된 경우 등은 문제가 된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별에 속한다.
김 아픈 동물을 돌보던 이들 중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수의사는 연명치료를 하라고 하는데 내가 항암치료를 택해서 아이를 빨리 보냈나’하는 식의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런 이를 위해 이 얘기는 꼭 해주고 싶다. ‘그 선택을 하지 않았어도 그 일은 일어나게 돼 있다.’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사랑하던 반려동물을 제대로 애도하고 잘 기억할 수 있다.
- 반려동물 애도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조 대개 현실을 수용하는 단계, 감정을 경험하는 단계, 그리고 현실에 적응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대상을 내 안에서 긍정적으로 재배치하는 단계로 진행된다. 현실을 수용하지 않은 채, 감정만 경험하거나, 또 감정 경험만 끝나고 현실에 적응하는 단계가 일어나지는 않는다면, 애도 단계가 멈춰 있는 것이다. 현실을 수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는 장례다. 반려동물이 죽었다는 것을 온전히 인지하고 받아들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절차는 꼭 필요하다. 반려동물의 사망을 인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김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반려동물이 떠나면 절에 가서 추모한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잘 이별하고 많이 슬퍼하고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는 게 좋다. 다시 다른 반려동물을 사랑할 힘이 생긴다.
조 사람은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입관하고 발인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쏟아낸다. 반려동물의 사별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 반려동물 문화는 반려인이 감정 경험을 이겨내는 데 어려운 측면이 많다.
김 반려견 찡이가 19살 때다. 남들은 안락사를 권했지만, 나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 오늘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밤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떠났는데, 많이 울었다. 얼마 전에 18살 고양이 대장이가 갔을 때는 장례를 잘 치렀다. 멍해지더라. 돌보는 길고양이 중에 새끼가 안 보여서 죽었나 싶어 슬퍼하고 있었는데 발견했다. 그때도 울었다. 감정을 견디고 억누르지 마시라. 반려동물만 생각하면서 펑펑 울어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 애도할 때 제대로 슬퍼한다는 것이 힘들다. 도움이 되는 활동이 있나?
조 편지를 써 내 안에 올라오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느껴보는 게 좋다. 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을지언정, 그걸 표현해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여러 접근법의 심리치료가 있다. 그 중 ‘게슈탈트 치료’는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심리적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빈 의자를 놓고 어떤 대상에 대해 감정들을 표현하게 하는 치료다. 그런 미해결 감정을 해소하는 데 편지쓰기 등은 효과적이다.
김 반려동물의 유골함을 땅에 묻었을 때, 우리 식구는 반려동물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편지에 써서 같이 묻었다. 그러고 나니 다들 마음이 평안해졌다. 죽음을 단절이 아닌 변화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반려동물 때문에 내가 바뀌었고, 바뀐 모습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 기억하는 방법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 차면 사랑할 마음의 공간이 없어지더라. 떠나보내고 다시 입양을 못 하는 이들에게 이 얘기를 해주고 싶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집착하지만, 마지막이 힘들 뿐 함께했던 긴 시간은 행복했다고.
정리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SC] 펫로스 증후군 셀프 체크 리스트
우리는 반려동물을 먼저 보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있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방황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은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것이다. 자신이 그런 상황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별 후 증세를 따져 보자.
① 극심한 우울감, 죄책감, 불안감을 경험한다.
②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중간에 깨어난다.
③ 쉽게 무기력감이나 피로감을 느낀다.
④ 일상생활이나 직무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⑤ 식욕이나 체중에 큰 변화가 생겼다. 1개월 동안 5% 이상 몸무게 준다.
⑥ 죽음이나 자살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다.
⑦ 사별 순간에 대한 기억들이 자주 떠올라 힘들다.
⑧ 예민하고 긴장된 상태로 있는 경우가 많다.
⑨ 자신, 타인,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신념이 생겼다.
⑩ 사별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소, 사람, 대화를 피하게 된다.
위에서 ‘네’라고 대답한 문항이 5개 이상이라면 전문가를 찾아갈 것을 권한다.
유선주 객원기자, 자료 제공 서울 펫로스상담센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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