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파사:라이온 킹'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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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애니메이션 영화의 경우 감독에 관해 언급하는 게 흔치 않지만 '무파사:라이온 킹'(12월18일 공개)이라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을 만든 배리 젠킨스(Barry Jenkins·45) 감독은 2017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문라이트'로 작품상을 받았다. 오스카 작품상을 차지한 감독이 애니메이션 영화를 연출한 전례는 스티븐 스필버그, 기예르모 델 토로 외엔 없다. 게다가 스필버그가 모든 장르를 섭렵해왔다는 점, 델 토로가 이미 애니메이션과 거리가 멀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철저히 현실 문제에 기반한 작품을 내놨던 젠킨스 감독이 애니메이션을, 그것도 디즈니와 손잡고 만들어낸 건 아귀 맞지 않는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파사:라이온 킹'을 보고 나면 그의 선택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 초원을 떠도는 사자 얘기를 해도 젠킨스는 젠킨스였으니까 말이다.
'무파사:라이온 킹'은 디즈니의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를 꽤나 올바르고 정확하게 실현한다. 그간 디즈니는 거칠고 엉성한 방식으로 PC를 밀어붙이며 오히려 백래시(backlash)를 유발했다. 하지만 젠킨스 감독은 특유의 주도면밀한 연출로 디즈니식(式) PC에 새 장을 연다. 그는 소외된 이들을 끌어안고, 고여서 썩어버린 기존 패러다임을 바로 그 아웃사이더가 무너뜨리는 이야기를 '라이온 킹' 스토리에 녹여낸다. 그러면서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공유해온 공통 가치인 꿈·희망·가족·사랑을 모두 담아낸다. 다시 말해 '무파사:라이온 킹'은 심바의 아비 무파사가 왕이 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각기 다른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떠돌이들이 (유사 대안) 가족을 이루고, 이들이 기존 권력을 무너뜨린 뒤 누구도 누구를 지배하지 않는 새로운 체제를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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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본다면 '무파사:라이온 킹'은 젠킨스 감독의 대표작 '문라이트'(2016)와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2018)을 전체관람가 등급으로 아우른다고 할 수도 있다. '문라이트'는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인 흑인 동성애 남성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뤘고,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은 강간범으로 내몰린 흑인 남성을 통해 구조적 차별을 집중적으로 풀어냈다. '무파사:라이온 킹'은 애니메이션 특유의 친절하고 명료한 화법으로 개인적·사회적 차원 모두에서 마이너리티를 다룬다. 이 때 '라이온 킹' 시리즈를 관통하는 두 가지 대사는 한층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네가 누구인지 기억해야 해." "우린 다 위대한 생명의 순환 속에 연결돼 있어." 그리고 젠킨스 감독은 무파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완벽하게 태어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특권층도 아니었죠."
'무파사:라이온 킹'은 무파사의 형제 타카와 손녀 키아라 두 캐릭터를 통해 한 단계 더 복합적인 이야기로 도약한다. 타카는 전작에서 시종일관 악한으로 묘사된 스카의 젊은 시절 이름. 젠킨스 감독은 혐오와 편가르기가 판치는 시대에 기존 선악 구도를 반복하는 건 이 작품을 보게 될 다음 세대에게 악영향을 준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타카의 변심을 최대한 설명하고, 그가 최소한의 인간성을 잃지 않게 하며, 그의 실수를 무파사가 끌어안게 함으로써 공존과 연대를 주창한다. 그러면서 타카가 자신을 스스로 스카(scar)로 명명하게 해 그의 눈에 난 상처를 타인이 찍은 낙인이 아닌 새로운 시대를 역행한 자의 반성으로 남긴다. 그리고 손녀 키아라는 무파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유산을 이어 받는다. 무파사의 포효와 키아라의 울음이 겹쳐질 때 무파사 전설은 키아라의 현실로 전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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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런 관점에서 보지 않더라도 '무파사:라이온 킹'은 즐길거리를 충분히 갖춘 오락물이다. 원작을 망쳐놨다는 혹평을 받은 '라이온 킹'(2019)에서 관객이 가장 많이 지적했던 건 실사화 탓에 사라져버린 감정 표현이었다. 후속작은 실사화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 감정이 충분히 담겨 있는 표정을 구현해낸다. 원작만큼 역동적이진 않아도 각 캐릭터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느끼기엔 무리가 없다. CGI는 또 다른 볼거리. 4년 간 2억 달러(약 2880억원)를 쏟아부어 완성한 영화답게 초원·산·강·폭포, 눈(雪)·물·흙·태양 등 모든 표현이 극도로 세밀하다. 유독 얼굴 클로즈업 장면이 잦은 작품이기도 한데 그만큼 시각 효과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될 수 있으면 큰 화면에서, 최적의 사운드 시설을 갖춘 곳에서 보는 게 이 영화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이다.
음악과 액션은 '무파사:라이온 킹'을 애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Hakuna Matata' ‘Circle of Life'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등 이미 OST 명곡을 가지고 있는 이 시리즈는 뮤지컬 음악 거장 린마누엘 미란다를 불러 들여 음악 완성도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형제가 있길 바랐어' '말해줘 너라고' '밀레레' '우리 같이 가' 등 새 노래는 미란다를 왜 천재로 부르는지 새삼 알게 한다. 다만 원작 OST를 뛰어 넘을 만한 곡이 없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자연환경을 적극 활용하며, 캐릭터 움직임을 극대화한 구도로 풀어낸 각종 액션 시퀀스의 완성도는 전작을 훌쩍 뛰어 넘는다. 초반부 홍수 장면과 아기 사자들의 달리기 시합을 다이내믹하게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끝까지 볼 수 있게 해준다. 배우 매즈 미켈슨, 에런 피어, 켈빈 해리슨 주니어 등이 맡은 목소리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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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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