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도 보핍도 위풍당당한데… '디즈니 코리아'만 외모 타령

'알라딘' '토이스토리4' '라이온킹' 등 소셜미디어에 올린 홍보물 문구에

"女주인공 외모 지향적 표현 불편"

"영화의 메시지를 깎아먹는 마케팅…. 대체 생각이 있는 걸까?" 영화 '라이온 킹' 개봉을 앞두고 얼마 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디즈니 코리아)가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린 게시물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17일 개봉하는 '라이온 킹'은 1994년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한 '라이온 킹'을 실사 버전으로 바꾼 영화. 여주인공이자 암사자로 등장하는 '날라'를 디즈니 코리아가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사바나의 예비 영부인' 같은 수식어로 묘사한 게시물을 인스타그램 등에 올린 게 발단이다. 해당 게시물은 각종 영화 커뮤니티 등에 급속도로 전파되며 비난받기 시작했다.

"디즈니 본사가 디즈니 코리아의 이런 행보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젠더 감수성이 대체 있긴 한 건가" 같은 글들이 이어졌다. 주인공 '심바'의 친구이자 용감하고 지혜로운 캐릭터로 등장하는 날라를 그저 예쁜 암사자로 묘사하면서 평가절하했다는 내용. 심바를 묘사할 땐 '용맹한 미래의 왕' '사바나의 젊은 피', 심바의 아버지 '무파사'는 '진정한 리더'처럼 성별과 무관한 표현을 썼다는 점도 지적됐다. 한 영화 커뮤니티 회원인 대학원생 김진희(39)씨는 "디즈니가 최근 '알라딘'이나 '토이스토리'를 통해 과거의 전통적이고 구태의연했던 여성 캐릭터를 비틀어 새롭게 보여주려는 시도를 해왔는데, 한국 측의 잘못된 마케팅이 그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했다.

◇용감한 여성에게 '예쁨주의보'?

디즈니 코리아가 자사 영화의 여성 캐릭터를 홍보하면서 비난받은 건 처음이 아니다. 올해 3월 개봉한 '캡틴 마블'의 주인공 캡틴 마블(브리 라슨)은 최근까지 월트디즈니컴퍼니가 내놓은 여성 캐릭터 중 가장 강력한 힘과 능력을 자랑하는 인물. 그러나 디즈니 코리아 측이 캡틴 마블을 홍보하는 게시물에 썼던 문구는 '단발에 화려한 슈트, 정색하는 얼음공주 표정까지?'였다. 영화 팬들은 "여성 영웅을 옷이나 외모처럼 외적인 요소로만 묘사했다"고 비판했다.

젠더 감수성 부족으로 비난받은 디즈니 코리아의 온라인 홍보물. 왼쪽부터 ‘알라딘’의 재스민, ‘토이스토리’의 보 핍, ‘라이온 킹’의 날라. 외모 품평 일색이거나, 남성 캐릭터의 조력자로만 여성을 묘사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알라딘'에선 주인공 '재스민'이 1992년 원작 애니메이션과 달리 여성은 술탄이 될 수 없다는 이슬람 왕가의 관습을 깨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알라딘'을 본 관객 중 여성이 71%. 그러나 디즈니 코리아는 이런 재스민을 소개할 때도 '예쁨주의보' '그래서 메이크업은 어떻게 하는 건데?' 같은 외모만 부각하는 문구를 삽입해 뭇매를 맞았다. '토이스토리 4' 개봉 당시엔 기존 시리즈보다 한층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여자 인형 캐릭터 보 핍을 소개하면서도 '우디 여친 보처럼 예쁘게 변신!'이라고 했다.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자주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디즈니 코리아 측은 문제가 된 소셜미디어 포스팅을 삭제했다. 디즈니 코리아 관계자는 "앞으로 홍보할 때 좀더 세심하게 신경을 쓰겠다"고 했다.

◇'흑인 인어공주' 놓고도 설왕설래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새로운 여성상 만들기 도전도 쉬워 보이진 않는다. 디즈니가 1989년 발표한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실사(實寫)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발표한 주인공 캐스팅이 대표적. 인어공주 애리얼 역할에 19세 흑인 R&B 가수이자 배우인 핼리 베일리를 발탁하자 베일리는 "꿈이 이뤄졌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지만, 일부에선 '안데르센의 동화 속 인어공주는 붉은 머리칼에 흰 피부를 지닌 여인이다. 흑인 인어라니 말도 안 된다' 같은 비난을 퍼부었다. 일부에선 '당신은 나의 애리얼이 아냐(#notmyariel)'란 뜻의 해시태그를 달며 항의 운동까지 벌였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측은 "애리얼은 덴마크 출신이다. 덴마크 사람이 흑인일 수 있는 것처럼 덴마크 인어도 흑인일 수 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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