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정보를 체계화해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유용하게 만들자'는 구글의 메시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슬로건이지만, 올해의 경우 이 같은 회사의 사명이 더 극명히 드러났다.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기술이나 훨씬 더 사용하기 쉬워진 AI, 기존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399달러에 새로운 스마트폰 '픽셀 3a'를 내놓으며 각종 고급 기능을 넣은 것도 최첨단 기술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선다 피차이 구글 CEO가 7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쇼라인 앰피씨어터에서 열린 ‘구글 I/O 2019’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구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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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 장사꾼' 이미지 불식에 전념
올해 구글이 이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선 건 최근 미국 내에서 지속적인 논란이 되고 있는 IT 공룡기업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무관치 않다. 최근 구글은 유럽연합(EU)의 프라이버시 가이드라인을 위반해 거액의 벌금을 얻어맞았고, 경영진은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미 의회 청문회에 수차례 소환되기도 했다. 미국 내에서는 구글에 대해 '데이터(개인정보) 장사꾼'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까지 생겼다.
모바일에서 스마트홈, 자동차 등으로 자사 플랫폼을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 있는 구글에게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이슈는 결코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IT 업계가 모두 사활을 걸고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AI나 클라우드 분야는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선다 피차이 구글 CEO가 기조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강력한 개인정보 정책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피차이 CEO는 ""보안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개인정보라고 할 수 없다"며 "구글에서는 사용자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번 구글 I/O에서 구글은 구글맵과 검색에 개인정보 보호 강화를 위한 '인코그니토(incognito) 모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인코그니토 모드는 사용자가 맵을 통해 검색하거나 네비게이션 기능으로 방문한 장소의 기록을 구글에 저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이다. 또 구글 어시스턴트의 기능 상당부분을 클라우드 연결없이 온디바이스(On-Device)로 처리해 클라우드로 저장되는 개인정보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도 일부분 해소했다.
착한 기술 기업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들도 전면에 내세웠다. 청각장애인 맞춤형 서비스인 ‘실시간 자막(Live Caption)’ 기능은 기존에 유튜브 등에서 도입됐던 ‘자동 자막’ 기능을 발전시킨 서비스로, 클라우드에 연동된 서비스인 자동 자막과 달리 온디바이스 형태다. 온라인 연결 없이 휴대전화에 저장된 모든 영상·음성 파일에 적용할 수 있다. 언어장애를 돕는 프로젝트 유포니아(Euphonia)도 이번 행사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구글이 미국 전역에 설치한 픽셀3a 광고판. 애플 아이폰X와 화질을 비교하며 가격 차이를 부각하고 있다. /9투5구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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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만원 스마트폰 시대, '뼈있는' 한방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주력 스마트폰 픽셀의 보급형 버전인 '픽셀3a'도 공개됐다. 가격은 399달러(약 46만7000원)~480달러(약 56만원)인 픽셀3a는 구글의 모든 최신 소프트웨어(SW)를 가장 저렴한 가격의 하드웨어로 구현한 스마트폰이다. 100만~200만원대의 스마트폰이 판치는 스마트폰 업계에 절반도 안되는 가격의 신제품을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
픽셀3a는 스마트폰의 두뇌격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로 퀄컴의 중저가형 칩셋인 ‘스냅드래곤 670’을 사용했으며 4GB 용량의 램이 탑재됐다. 저장공간은 64GB에서 128GB를 제공하며 1200만화소의 카메라가 탑재됐다. 하지만 저조도 촬영모드, 인물모드 등 SW를 통해 최상의 화질을 제공한다는 것이 구글 측의 설명이다.
픽셀3a는 구글의 최신 기술이 담긴 새로운 운영체제 '안드로이드Q'를 지원하는 첫 스마트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10배 이상 속도가 빨라진 구글 어시스턴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퀄컴의 중저가형 칩셋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구글의 최신 기술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건 기존의 100GB 이상의 용량의 AI 알고리즘을 클라우드가 아닌 스마트폰 안에 0.5GB로 구현해내는 새로운 딥러닝 기술 덕이다.
이처럼 구글이 클라우드에 대한 의존성을 크게 줄인 스마트폰을 내놓은 것은 AI 분야에서 큰 의미가 있다. 지난해부터 AI 분야 전문가들이 예상해오던 '기계 속에 이식된 인공지능'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다만 구글은 이에 대한 핵심 기술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인공지능 신경망인 RNN(Recurrent Neural Networks) 기술을 활용했다는 설명 외에는 이렇다할 이름도 붙이지 않았다.
업계 안팎에서는 구글이 이같은 기술을 보급형 제품인 픽셀3a에 집중시킨 것이 앙숙인 애플의 아이폰 제품의 프리미엄 '거품'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구글은 '구글 I/O 2019' 개막과 함께 미국 곳곳에 999달러인 아이폰X와 399달러인 픽셀3a의 사진 화질을 비교하는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구글 I/O는 구글이 직면한 위기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을 있는 가감없이 드러낸 행사"라며 "새로운 개인정보 정책과 기능, 장애인이나 사회적 공헌을 위한 신기술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픽셀3a 역시 준수한 평가를 받으며 가격만 상향평준화되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을 환기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운틴뷰=황민규 기자(durchm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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