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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세포가 바뀌었다?’ 제2의 인보사 사태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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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사의 핵심 기능 연골세포가 신장세포로 드러나

효과보다는 종양 생길 부작용까지 거론되고 있어

비싼 비용 들이고 부작용 겪을 환자들 소송 준비도

“첨단기술 앞세운 기업보다는 환자 안전 우선돼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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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골세포를 잘 자라게 하는 성질을 넣는 기술로 만들었다던 유전자치료제에 들어 있는 세포가 알고 보니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다? 그럼 무릎 등 관절 안에서 신장 조직이 자라는 것 아닌가?’ 골관절염이 있어 이를 치료하겠다고 한번 주사에 450만~700만원에 이르는 엄청난 돈을 내고 인보사케이주(인보사)를 맞은 환자는 황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돈을 들인 것도 문제인데, 게다가 자칫 부작용에 시달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코오롱생명과학이 앞으로 15년 동안 부작용 가능성에 대해 추적관찰한다고 하니 이 기간 아니면 그 이상 혹시 모를 부작용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이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일입니다.

그럼 어쩌다가 인보사는 이런 사태를 맞이하게 됐을까요? 우선 관절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요. 관절염은 뼈와 뼈가 맞닿는 부분 즉 관절의 연골이 닳아 없어져서 생기는 질환입니다. 통증과 관절의 기능상실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는 질환이지요. 주로 노인층에게 많은데요. 치료는 약물치료와 관절 주변의 근육강화훈련 등으로 관절의 염증과 통증을 줄이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그럼에도 관절염이 계속 진행되면 인공관절로 바꿔주는 수술을 해야합니다. 환자들로선 연골이 재생되는 치료를 고대할 수밖에요. 예전에는 상어 연골이 좋다며 그런 성분을 담은 건강식품을 챙겨 먹기도 하고, 연골과 비슷한 성분의 주사를 맞기도 했습니다. 인보사엔 연골세포(1액)와 세포 증식 속도를 빠르게 하는 성질의 연골세포(2액)가 들어 있어 연골이 닳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해 환자들은 크게 환영했습니다.

그러던 지난달 미국에서 임상시험 도중 인보사 2액에 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코오롱생명과학과 식약처는 국내 유통 중인 인보사 등을 모두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2액에서 모두 신장유래세포가 검출됐습니다. 그렇다면 인보사는 인체에 어떤 효과를 낼까요? 인보사 허가와 관련해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해 결정하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록(2017년 4월)을 보면, 인보사의 경우 임상시험 도중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에서 이 주사를 맞은 관절염 환자의 연골 조직이 의미있게 늘어난 것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연골이 원래 또는 어느 정도 회복돼야 관절염이 개선될 것인데 그런 재생 효과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만 관절 통증이 줄고 관절의 기능이 다소 개선된 것은 기존의 치료제로도 누릴 수 있는 효과인데, 한번 주사에 평균 500만원짜리 고가의 치료제를 허가하는 게 타당하느냐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핵심 성분인 2액이 신장유래세포였기 때문일까요? 이미 허가 당시에도 연골 재생 효과는 관찰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부작용인데, 바로 종양 유발 가능성입니다. 연골 부위에 다른 세포가 들어갔으니 종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6일 가톨릭의대에서 열린 ‘골관절염 치료제 개발 현황과 개선방향’ 토론회에서는 인보사 2액인 신장유래세포는 증식이 빠른 세포여서 연골세포와 섞이면 연골세포 대신 이 세포가 관절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자칫 1액의 연골세포마저 별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들 수 있고 신장유래세포가 증식을 빨리 하면 종양 유발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코오롱 쪽은 미국 등에서 권고한 대로 방사선을 쬐어 종양 유발 가능성을 제거했다고 해명합니다. 그럼 신장유래세포로 드러난 연골세포가 빨리 자라는 성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세포가 바뀐 마당에 효과를 논하기는 그렇고 앞으로는 몸 속에 들어오면 몇십일가량 생존한다는 신장유래세포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도 주목 대상입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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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기능을 하는 세포가 뒤바뀌었다는 얘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입니다. 2005년 터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팀의 논문 조작 사건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옵니다. 당시 세계적인 성과로 소개된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는 사실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이후 실험실에 보관된 줄기세포가 없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황 전 교수는 누군가 ‘섞어심기’를 해서 생긴 일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결국 줄기세포는 만들어지지 않았고 황 전 교수팀이 논문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5년이 지난 현재 핵심 기능을 하는 세포가 뒤바뀐 채 환자들한테 주사로 투여되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번 사건을 밝혀낸 게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건 매우 뼈아픈 대목입니다. 황 전 교수팀의 논문 조작사건은 국내에서 밝혀져 우리나라 의과학계가 검증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됐습니다. 자칫 한국에서 새로 개발된 의약품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가 근본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각 인보사의 허가를 취소하고 해당 허가를 내 준 식약처에 대한 감사가 필요하다는 보건의료단체들의 주장이 타당성 있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제2의 인보사 사태를 막으려면 신의료기술이 안전하면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평가나 건강보험 적용 절차를 제약사나 제조사의 요구대로 줄이거나 첨단 바이오기술이라며 혜택을 주는 현재 정부 정책을 재검토해야 합니다. 대신 국민과 환자한테 값 싸고 안전한 의약품이 생산되도록 정부가 더 꼼꼼히 평가하고 허가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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