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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흉기 찔리고도 끝까지 주민 구한 20대 관리소 직원 "누구라도 그렇게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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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아파트관리사무소 직원 인터뷰
주민 대피시키다 복도서 범인과 마주쳐 흉기에 찔려
끝까지 주민 구한 뒤 마지막에 구급차 타
"주민이 우선이라고 배워…누구라도 그렇게 할 것"

‘땡땡땡~~ 띠리리리~’

지난 17일 새벽 4시 25분쯤 경남 진주 가좌동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밤샘 야근을 하던 관리사무소 직원 정모(29)씨는 요란한 경보음을 듣자마자 곧바로 303동으로 달렸다. 4층에서 이미 화염과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씨는 곧장 4층으로 향했다. "불이야!" 그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무전기로 경비실 직원을 호출하고 주민들을 깨우던 정씨는 별안간 4층 계단 앞 복도에서 흉기를 든 방화살인범 안인득(42)과 마주쳤다.

조선일보

18일 경남 진주시내 한 병원에서 만난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관리소 직원 정모씨. /고성민 기자


안은 양손에 길이 34cm 회칼과 길이 24cm 부엌칼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는 ‘유일한 대피경로’였던 계단 2~4층을 오가며 대피하던 주민들을 공격하다 정씨와 마주친 것이다. 안은 정씨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정씨 왼쪽 광대와 오른쪽 턱 부위를 두 차례 찌르고 계단으로 사라졌다.

지난 18일 경남 진주시 한 병원에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만난 정씨는 흉기를 든 안과 마주쳤을 당시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라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는 흉기에 찔린 왼쪽 광대뼈가 골절된 탓에 더듬거리는 말투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씨는 "불이 난 것을 보고 위층으로 올라갈 땐 (안을) 못 봤는데, 갑자기 (안이) 4층에 나타났다"며 "관리소에서 일한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아 범인을 잘 모른다. 정신없는 상황이라 정확지 않지만, 나를 본 안이 내가 관리소 직원인 걸 알고는 ‘관리소에서 민원을 넣었는데, 해준 게 없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흉기에 찔린 정씨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얼굴에 난 피를 손으로 다급히 막던 정씨는 아래층에서 "딸이 다쳤어요" "(흉기에) 찔려서 피가 나요" 라는 외침을 듣고, 3층으로 향했다고 한다. ‘딸이 다쳤다’는 말에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정씨는 "워낙 정신이 없어 어떻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며 "저는 관리소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세대(주민들)가 우선이라고 배웠다"고 했다.

정씨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때, 안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을 본 정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다시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다급히 안내했다. 자신도 다쳐 얼굴에 피를 흘린 채였다. 안이 체포되고 주민들이 아파트 바깥으로 대피했을 때, 정씨는 주민들을 먼저 구급차에 태우고 자신은 가장 마지막 구급차에 올라탔다.

"저는 그래도 팔다리가 다 움직이지 않습니까. 다른 피해자들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파트 앞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한 분이라도 더 살면 좋으니까 저보다는 이분들부터 먼저 (구급차에) 태워드리라고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병원으로 옮겨진 정씨는 출혈이 심해 긴급히 혈액 2봉지를 수혈받았다고 한다.

정씨는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지금 같아서는 이번만큼 못할 것같다"면서도 "그 상황이 되면 또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 누구든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주=고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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